뉴욕 여행기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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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동안 짧게 인턴을 하며 목돈이 생기자

친구랑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시아, 유럽, 북미 등등 전 세계 수 많은 여행지 중에서 

어떤 계기로 뉴욕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지금으로써는 기억이 안난다.

 

다만 뉴요커들 스스로 자신들이 현재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확신하게 하는 도시,

스트릿과 아베뉴로 이루어진 격자형 도시,

월스트리트와 브로드웨이,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수 없이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

도시의 이데아인 뉴욕을 간다는 생각에

큰 맘 먹고 결제한 뉴욕행 에어차이나(!) e티켓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출발 4달 전부터 들떠있었다.

 

스스로도 2학기를 나쁘지 않게 보냈다는 만족감과 함께 여행만 떠나면 되는 상황.

그러나 시간이 시간인지라 여행으로 설렜었던 마음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상태.

오히려 베이징에서 장장 17시간 동안 경유를 해야되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다행히(?) 72시간 동안 무비자로 북경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었고

중국에서 유학 중인 친구를 만나 오랜만에 중국중국한 음식을 먹고

기숙사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일찍 공항으로 향해 드디어 뉴욕으로 가게 되었다.

(세 시간 지연은 함정)

 

베이징 수도 공항에서.. 뉴욕으로 데려다 줄 777

마침내 도착하게 된 뉴욕.

JFK에서 내려 이름모를 열차를 타고 맨하탄으로 입성했다.

예약한 한인민박이 메이시 백화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근처에 있던 것으로 기억...

 

도착해서 얼추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밖은 어두웠고,

뉴욕은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크리스마스 이브의, 그 특유의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놀이동산에 온듯한 뉴욕의 크리스마스 이브
록펠러 센터 앞

역시나 사람들로 바글바글..

조금씩 내리는 비와 함께.

피곤에 쩔은 상태로 대강 구경하고

그냥 길거리에 보이는 평범한 식당에 들어가

햄버거를 먹었다.

지금보니 그저그런 수제버거? 느낌

다음 날 크리스마스 당일.

생각해보니 해외에서 성탄절을 맞이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그래서인지, 아무도 없는 길거리와 굳게 닫힌 가게들을 보니

매우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도시 구경은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언제나 할 수 있으니까 famous attraction을 보러가기로 했다.

 

고3 시절, 그렇게나 열심히 공부를 안했음에도

수능 끝나고 나름 쉬어야 겠다는 의무감에 여러 영화들을 보며 시간을 때웠었다.

영웅본색, 대부 등등.. 하나같이 오래된 영화들.

그 중 하나가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였다.

멋모르고 본 것이라서 긴 러닝 타임이 힘들었지만

로버트 드니로의 강렬한 연기와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에 감탄했었다.

 

영화 속에서 유독 머릿속에 남았던 장면이

주인공들이 꼬마 시절 맨해튼 다리를 배경으로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씬으로써

그렇게 특별한 의미가 담긴 장면은 아니다.

그렇지만

곧게 뻗은 길 너머로 아득히 보이는 철 구조물의 아름다움,

에펠탑 같은 느낌은 아니면서도 비슷한, 한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상징물을 마주하니

순간 그 장면이 머릿 속에 각인되었던 것 같다. (뭐 이 영화의 포스터로 쓰이기도 해서 그럴수도)

 

온전히 영화 때문에 찾아간 브루클린.

그리고 정확히 같은 위치에 찾아가

수 십년간 그대로인 이 광경을 보며 희열감을 느꼈더랬다.

브루클린 너마저(?)
흐렸던 날씨가 막 개려는 순간

그러고 나서 오랜 역사의 브루클린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백여년 전에 이 다리를 만든 것에 놀라고 싶었지만

미국엔 그 보다 대단한 것들이 훨씬 많기에 놀라지 않았다.

서든어택 생각..버닝리버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레지던스? 오피스?

월가로 가는 길에 옛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를 지나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뉴스에 웬 비행기 한 대가 고층 건물을 들이받는 영상을 보며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지금이었으면 까무러쳤을, 정말 끔찍하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임에도

그 때는 현실감 뿐 아니라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기에

뉴스에 이어서 등장하는 미사일과 폭격 장면을 보고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었다.(성악설 1승)

그라운드 제로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음 행선지로 걸어갔다.

 

뉴암스테르담 시절엔 성벽(wall)을 따라 나있는 길이었지만

지금은 웬만한 벽보다 높은 수 많은 금융회사들과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포진해 있는 월 스트리트.

대학교 1학년 때라 아직 경제에 대한 관념도 없고 지금만큼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단지 관광지로써 월스트리트를 생각했던 것 같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

천문학적인 돈과 딜러들의 곤두선 신경,

신경망만큼 복잡한 케이블을 타고 흐르는 수 많은 주문들,

그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호가와 변동하는 주가,

억겁의 시간과도 같은 1분 1초,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이 곳.

한적하고 고요하지만 빅뱅과도 같은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바로 이 곳에서

단순히 황소 동상을 보며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소원으로 끝내 버린다면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뉴욕의 즐비한 고층 건물 앞에 압도되는 것도 좋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과 경제의 규모를 가늠하고 체감한다면

보다 더 큰 안목과 식견을 갖추고 야망을 실현해 나갈 힘을 얻지 않을까?? (도를 아십니까?)

월스트리트 어학원으로 가실 분은 강남역 n번 출구..
트럼프란 사람을 알기전에 찍은.. 유대교 횃불이 인상적이어서 찍은 사진.

확실히 이곳엔 유대인들이 많나보다..

이후 뉴욕대를 지나.. 숙소로 돌아갔다.

뉴욕머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
워싱턴 스퀘어
플랫 아이언 빌딩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한국보다 비싼 교통비를 감안하며

하이라인 파크까지 걸어갔다.

뭐 전날에도 브루클린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는데까지 걸어갔으니.. 이정도면 아무것도 아닌셈..

캐나다 좋아하세요?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버린 엠스빌

옛날에 고가 철길이었던 것을 지금은 공원으로 탈바꿈해놨다. 

이것을 보고 영감을 받은 읍읍읍이 서울역 앞 고가에 장난을 쳐놓았는데 진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이라인파크 시발점에서 쭉 걸어가다 보면 첼시마켓이 나온다.

첼시마켓 옆 구글..갓
첼시마켓 내 한국인 맛집.
첼시마켓 옆 백년이 넘은 스테이크집에서. 음식 사진은 어디갓니?

가난한 대학생이 오기엔

볼 것과 먹거리가 너무 많아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점심으로 랍스터에 스테이크까지 먹고 황급히 도망쳤따.(??)

 

기운이 난김에 이번엔 맨하탄을 횡으로 가로질러

유엔센터를 보러 갔다.

세상에서 가장 유교적인 국기 태극기
반세기 전 디자인이라기엔 너무나도 세련세련

여기서 중국인들이 자국 인권문제에 대해 서명 운동을 하는 걸 보았다.

이렇게 해외에 나와야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들이 안타까우면서도 대단했다.

우리한테도 중국말로 참여해달라고 했지만

당당히 배운 중국어로 Wo Shi Hanguo Ren을 시전.

그렇게 미국 땅에서 오고 간 처음이자 마지막 듕귁어..

 

모마모마모마

이 후 모마를 지나갔다..

이 날이 유니클로의 후원으로 저녁타임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날이었는데

티익스프레스 마냥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세계 어딜가나 볼 수 있는 인류의 보편적 특성이 아닐까??

하지만 하루종일 뚜벅뚜벅 했기 때문에 빠른 포기를 하고

바로 숙소로 돌아가 잠자는 기계마냥 쭉...잤다기엔 시차적응이 안되가지고 인터넷을 했다.

 

 

다음 날은 개인플레이하는 날이라

혼자 쟈철타고 저 멀리 할렘에 갔다.

흑형이랑 랩을 하고싶어서가 아니라..

더러븐 지하철. 쥐도 막 지나다닌다.

바로 컬럼비아 대학교가 할렘 근처에 있기 때문.. 

좀 무서웠지만 캠퍼스 내로 들어오니 마음이 놓였다. 

방학이라 사람도 없고..

쭉 돌아봤는데 노잼이라 금방 돌아옴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

이 날 점심으로 모마 앞에 위치한 할랄가이즈 포장마차(?)를 선택

이때는 아직 한국에 런칭하기 전이었다.

신기하게 여기는 정식 매장이 있는게 아니라 길 한복판에서 붕어빵 장사 마냥 음식을 팔고 있었다.

6달러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플래터를 받아들고 근처 빌딩 앞 공간에서 앉아 추위에 떨며 한 입 먹은 순간

모든 걱정근심이 해소되는 맛이었다. 

양도 꽤 됬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증발. 남길 수 없는 맛..

개인적으로 한식보다 다른 나라 음식을 더 좋아하기에..

특히나 중국, 중동 쪽 향이 강한 음식을 매우 좋아하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배를 채우고 이번엔 이태리 이민자들이 모여산다는 (언제적 이야기..?)

리틀 이탈리로 갔다.

여길 간 이유는 단 한가지.

대부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21살 맞냐)

여기서 나는 니노 로타의 대부 사운드 트랙을 들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민자의 설움과 남자의 고독함, 냉혹한 현실세계 등등을 느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PMP로 인강 대신 대부 트릴로지를 보며

(특히 장장 3시간 짜리의 대부2는 정말정말 노잼이었지만)

어느정도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마냥 학생으로 머물러 있는게 아니구나.. 정말 나도 수능이란걸 보겠구나.

이때는 수능을 보고나면 고생이 끝날 줄 알았다. 행복시작이구나~~

 

이후 절대로 안 볼 줄 알았던 수능을 보고, 재수를 하고 (당연한 귀결..)

대학도 공대라는 곳을 가고, 군대를 가고,

복학 후 인턴도 하고, 실연을 겪고,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는 등등

20대가 되고나서 다시 대부를 보니

영화에서 안보이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고 장면 하나하나가 와닿을 수 밖에 없었다..

 

소설 '죄와 벌'을 보며 나의 내면이 철저히 고발당하는 수치심을 느꼈던 것 처럼,

대부 3부작에는

상관의 요구에 갖가지 핑계를 대지만 결국엔 시행해야 했던,

부당한 부조리에 맞서지 못하고 순응해야 했던,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야했던,

사랑이라 확신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야 했던,

계획대로 되가는 줄 알았지만 나만의 착각이었던,

유능한 사람들 뒤로 뒤쳐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내 지난 날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런 상념은 뉴욕을 갔다오고 나서 한참 뒤에 하게 되었지만,

이 당시에는 Nino Rota의 선율을 들으며 거리를 배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형이 왜 여기서 나와?

이후 약속장소인 브루클린으로 가기위해

계속 걸어서 남하했다.

대법원?
로마숫자 읽기 어려워요
리멤버 코리안워
새로지은 WTC
브룩스 플레이스였나??

둘 다 심카드가 없는 상태라

구두 약속으로 브루클린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정말 로맨스 영화마냥 친구가 그 자리에 없었다.

 

다행히 역 전체를 뒤져보니 찾을 수 있었다! 

 

브루클린 쉐익쉑에서 맛잇게 햄버거와 쉐잌을 먹고 야경을 구경햇다

쉐이크 주제에 뭐 이리 비싸...이런 쉨

맨햍은 야경
카페베네형이 왜 여기서 나와?

다음 날 

그렇게 고대하고 고대하던 MoMA에 가서

정말 내가 살아오며 책이랑 영상으로만 봤던 온갖 그림들을

내 bare eyes로 직접 보게 되었다.

또 여름방학동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그 유명한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다 읽었기 때문에!

더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관람에 임했다.

 

현대카드 특정 등급 이상이면 무료관람이 가능하지만

나는 연회비 2000원짜리 가장 저급 회원이어서 단칼에 기각당했다.

 

학생 할인이 가능하지만 국제학생증이 없어 포기하려던 찰나

여기까지 온김에 소심히 한양대 학생증을 내미니 흔쾌히! 할인을 받아 기분이 좋아졌다.

무튼 그렇게

 

피카소의 아비뇽 처녀들(아비뇽 유수 아님)
샤갈의 나와 흰 당나귀와 나타샤
06년 6월 모의고사 언어영역 비문학
앙리 마티스 (인간의 굴레에서)
달리 할 말이 없네
피에트 몬드리안, YSL 드레스
피카소
잭슨 폴록

 

잭슨 폴록
Jasper johns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앙리 마티스

피에트 몬드리안

로이 리히텐슈타인

잭슨 폴록

앤디 워홀 

이 외에도 나의 무지로 인해 지나친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며 행복에 겨워했다!

 

 

뉴욕에 온 김에 친구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봐줘야 하지 않겠냐며

거금을 들여 저녁에 오페라의 유령을 봤다. (내 미네랄..)

몇몇 내가 들어본 유명한 넘버가 끝나고 이내 리스닝의 한계에 부닥치자

값비싼 수면타임을 가졌다.

 

인상적이었던 것이 유령 역이 흑인이었다는 점. 그냥 그랬다고...

매제스틱 극장

다음 날

낙수장으로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그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향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른 노래 중 'Frank Lloyd Wright'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나름 컬럼비아 대학교 건축학과를 나온 아트 가펑클의 직속선배가 되시겠다...

미국도 학연 위주의 문화가 강한듯 (갑자기?)

이 건물을 처음 알게된 계기는..

유치원 시절이었나?? 맨인블랙1에서 초반에 사람 잡으려고 빙글빙글 뛰어다니는 장면..

쌈지길의 시초라고 격하시키지 맙시다

다보고나서 센트럴파크를 따라 쭉 남하했다.

여기서도 서로 솔플을 하기로 해서

나는 센트럴파크의 드넓은 평원(?)으로 가

30여년 전 이곳에서 펼쳐진

사이먼 앤 가펑클의 Concert in the Cental Park의 공연실황을 떠올리며 배회했다.

나름 그 당시 비공식 추산 최대 50만명이 왔다는데 (촛불집회급 기적의 계산법...)

유튜브로 수없이 돌려봤던 영상들을 떠올리며 나만의 성지순례를 했다..

 

계속 남하해서 5번가의 그 유명한 애플스토어도 보고,

1985년 엔화와 마르크화의 가치를 절상시켜 일본에게는 버블경제의 종말을 고하고

독일로써는 유럽연합의 출범을 앞당기게한 플라자 합의가 일어난 플라자 호텔도 가보았다. (TMI;)

덕분에 우리나라의 수출길이 트여 3저시대와 함께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겪었다고.

(솔직히 지금 매 순간 대한민국 전성기 갱신중인거 같은데!)

 

더 남하하니

미국 재벌의 시초중의 시초 철도왕(?) 밴더빌트가 만든 

그랜드 센트럴 역이 보였다.

그 유명한 시계. 거의 공공장소 시계의 이데아 급
구 팬암빌딩, 그랜트센트럴역, 크라이슬러 빌딩

이후 서쪽으로 향해서

맨하탄의 예술의전당, 링컨센터로 갓다.

공연을 보러 가는건 아니고.. 건물이 이뻐가지고..

 

건물 디자인 정말..ㅠ

70년대에 이런 건물 형태를 본 당시 사람들의 그 신선한 충격을

나도 정말 fully 느껴보고 싶다.

또 여기만의 특유의 안정된 분위기가 있다.

예술의 전당가면 느낄 수 있는, 같은 주파수인 느낌?

여기에 그 유명한 줄리어드도 있어서 구경하려햇지만 개찰구로 막혀잇어 밖에서만 구경햇다.

나중에 여기서 호두까기인형을 보는 날이 왔으면..

그냥 조형물.
파리바게트형이 왜 여기서 나와?

 

다음 날 

뉴욕에서 터를잡은 사촌누나를 만나

소호 구경을 했다. 

브런치?로 쿠바 샌드위치를 먹고

그렇게 걸어서 쭉쭉 가보니

그 당시에 한국에 런칭하기 전인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에 다다랐다.

매그놀리아 = 목련
섹스앤더시티 촬영지도 근처에..

몰랐는데 이쪽 동네가 매우 부촌이라고!

그 후 쟈철을 타고 힙하다는 윌리엄스버그로 가서

유명한 커피점에서 커피도 마시고

윌리엄스버그에서 바라본 맨해튼

그 주변 유대인 거주지역도 돌아보고..

피터루거 스테이크집도 지나고

참 재밌는 지역이었다.

뉴올리언스 식의 굴 요리집.. 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사촌누나한테 마음의 빚을 지고

마지막 날을 보냈다.

이날이 31일이라 브로드웨이는 통제불가한 구역이 되어버렸고..

친구랑 같이 브로드웨이에서 신년을 맞이하려 했지만

좋은 자리를 잡으려면 한나절을 거기서 기다려야 한다고.. 화장실도 못가고

군대도 갔다오기 전이라 그냥 깨끗이 포기하고!

간단히 맥주나 마시며 2014년을 마무리 하려 했는데

미국은 만19세가 넘어도 술을 못마신단다... 그렇게 거절을 당하고

스프라이트를 마시며 2015년을 맞이했다..!

친구와 함께
bye NY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17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은 

정말 기분좋은 여행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되어버렸다..

여행은 끝났는데 집에 갈 수 없는.. 뭔가 착잡한..후

이래서 웃돈을 주고서라도 직항을 타는구나! 하면서도 항상 경유편을 사게되는 나.

그래도 다음 환승을 기다리며 공항 내에서 샤워시설도 이용해보고 새벽 항공편을 이용하는 다양한 여행객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잠들기에는 생각보다 쌀쌀해서 유쾌하진 않았다. 

 

 

뉴욕은 볼거리가 참 많은 도시다.

가로세로 계획적으로 잘 설계된 도시 속에는

수 많은 상업용 빌딩과 공공 건물들, 그리고 주거시설이 있으며

그 속에서 가지각색의 에피소드들이 잠들어 있다.

그리고 뉴욕만큼 전 장르에 걸쳐 대단한 영화가 만들어 지는 도시도 없다.

그렇게 수없이 재생산된 미디어들을 보며 뉴욕에 대한 환상에 빠지지 않는 것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뉴욕은 파리를 갔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재밌지 않았다.

마지못해 관광객들을 대하는 느낌.

영화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좀처럼 느끼기 힘들었다.

분명 갈 만한 관광지는 다 둘러봤음에도 한국에 와서 드는 이 공허함은 뭐지? 싶었다.

그리고 이내 그에대한 답을 찾았다.

 

뉴욕은 뉴요커를 위한 도시다.

뉴욕에 살고있는, 삶의 전선에 뛰어들어 바쁘게 일하고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도시.

바로

밀린 방세에 전전긍긍하며 오늘도 어김없이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이민자를 위한,

폭락한 주식 전광판을 뒤로한채 고층건물 꼭대기에 다다른 딜러를 위한,

차이나타운에서 고향에 있었을 때와 똑같은 음식을 팔고있는 중국인을 위한,

학비로 인해 가세가 기운 가족을 생각하며 밤새도록 공부하는 학생을 위한

바쁜 짬을 내어 센트럴파크를 산책하는 연인들을 위한

잦은 출장으로 이젠 자기 동네보다 뉴욕이 익숙한 외국인을 위한

...

이런 삶의 현장 속으로 관광객이 비집고 들어가려해도

뉴욕에게 그만한 여유가 없다.

관광객으로써 바라 본 뉴욕과

삶의 구성원으로써 바라 본 뉴욕.

영화는 후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전자인 내가 그런 감정을 느끼기엔 쉽지않다.

 

같은 맨하탄이지만 한 블록 한 블록 지날 때마다 달라지는 분위기.

같은 미국이지만 지하철 역에서 내렸을 때 펼쳐지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

길지만 짧지않은 세월동안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이룩해낸 결과물.

이 모든 것을 느끼고 감동하려면 나 또한 여기에 동화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를 구구절절 길게도 써놨네)

 

뉴욕은 고사하고

캘리포니아에서 일해보고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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