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혼자여행 13 - 파리 (앵발리드, 봉막쉐, 빌라 라호슈, 16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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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게 있어 2019년 여름은 몇 십년 만에 역대급으로 더웠다고 한다.

다행히 내가 간 8월 말은 폭염이 많이 사그라든 상태여서 땀을 많이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

 

호스텔 화장실 밖으로 보이는 풍경..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집뷰이지만 제대로 파리 감성이다.

조식은 무료였는데 돌 같이 단단한 바게뜨빵이 전부였다. 

고행에 가까운 아침식사..

 

 

유럽 오기 전 레미제라블을 다 읽었던 터라 워털루 전쟁의 장본인인 나폴레옹에 대한 관심도가 많아졌고

나름 프랑스 전쟁기념관으로 불릴 수 있는 앵발리드로 향했다.

앵발리드의 표기는 invalid로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유효하지 않은' = >'환자'의 뜻을 가진 불어라고 한다.

한 때 군병원으로 쓰였다고하니..

 

 

앵발리드 근처 건물에 에어프랑스가 위치해 있다. 

나름 오랜 역사를 가진 항공사라 그런지 옛 시절의 굿즈들을 판다.(40~70년대)

 

앵발리드

내 기억으로는 그랑팔레 쪽에서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건너면 바로 앵발리드가 보인다.

저 금색 돔이 참 인상적인데, 뭔가 샌프란시스코 시청사 같이 보이기도 한다.

 

나름 국가에서 관장하는 곳이라 대학생인 나는 학생 할인을 받을 수 있었고

학생증을 내밀자 매표소 직원이 반갑게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말했다.

미국 유명 프로그램 진행자 제임스 코든을 닮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충북대인가에서 교환학생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유쾌하게 대화를 주고받곤 입장을 했다.

 

확실히 견학 온 프랑스 새싹들이 많이 보였다.

 

입장 전

저 시계 밑에 검은색 나폴레옹 상이 있다.

 

이제 들어가면 중세 때 부터 19세기까지 프랑스군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온갖 갑옷, 칼, 창 부터 시작해 기마 디자인, 화포, 총 등등

그리고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전투들이 어떤 양상으로 벌어졌는지에 대한 인포그래픽 자료들까지.

옛 백년 전쟁 때 부터 워털루 전쟁까지 영국이 항상 등장하던데

무슨 감정이 들지 궁금하다.

 

미국 독립전쟁에 관한 부분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프랑스가 미국에 지원을 많이 한 것 같았다.

 

그렇게 다 돌아보고나서 보면 나폴레옹 무덤이 뙇 있다.

 

 

이렇게 보면 검소해보이지만 사실 사이즈가 장난이 아니다.

묘를 감싸는 동심원엔 나폴레옹이 활약했던 전장들이 적혀있다. 모스크바, 아우스털리츠, 피라미드(?) 등등

그리고 그 주변엔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들 이름이 적혀있다.

 

히틀러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가장먼저 이곳에 와 나폴레옹의 묘를 방문했다고 한다. 존경의 의미로..

 

사진보다 훨씬 웅장하다

이렇게 한 인물을 우상화에 가까울 정도로 잘 모신 앵발리드를 구경하고 나니

나폴레옹은 명실공히 고대 한니발 부터 이어내려온 유럽 재패자 중 한 명이고

왜 전 날 만난 프랑스친구가 나폴레옹을 안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저런 건축양식과 더불어 개선문의 디자인을 보면

나폴레옹이 옛 로마에 대해 엄청난 동경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다 보고나니 점심이 되었고

구글맵스에서 평이 좋은  chez ferdinand(퍼디난드의 집?)에서 밥을 먹으러 갔다.

식당으로 걸아가는 도중 우연히 봉막쉐(bon marche = 좋은 마켓?) 백화점을 지나게 됬고 

식후에 들르기로 했다.

 

여행객에게 있어 필수인 프랑스 음식 달팽이(L'escargot)와

 

스테이크를 시켜 먹었다. 근데 저 고기보다도 옆에 나온 본 매로우라는 음식이 기억에 남는다.

뼈 속의 골수를 조리한 요리인데 저걸 빵에 발라먹으니 뭔가 사골탕의 친숙한 향도 나면서 좋았다.

 

식당이 위치한 곳이 '생제르망 데 프레' 였는데 이 곳 주변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주변 가게 구성이며 딱 내 스타일.

 

직원용?

맨날 길거리에서 자라, 흐앤므만 보다가 유니클로가 나와서 반가웠다.

그런데 정말 말도 안되는 옷을 팔고있었다..

 

다시 걸어서 봉막쉐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나름 유명한 루테시아 호텔

봉막쉐 주변에 있는 건물들을 보니 분명 어디서 많이 본 건물들이다.

실제로 프랑스 영화에서 자주 봤던 건물..

 

 

또 바로 옆엔 르코르뷔지에의 옛 건축 사무소가 있던 빌딩이 있다.

한국 근대 건축가 중 유명한 고 김중업씨께서 여기서 일을 했었다는 TMI.

서강대 본관, 삼일빌딩 등등 나름 한국 건축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그 옛날 60년대에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동양인이 고군분투했을 것을 상상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파예트, 쁘랭땅과 함께 파리 3대 백화점으로 불리는 봉막쉐 백화점.

여기는 특히 식품관이 유명하다고 한다.

외관을 보니 생각보다 작은 규모에 실망을 했다.

당장 서울에 있는 롯데나 신세계만 가도 이보다 훨씬 크니..

최근에 개장한 더현대서울이랑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아담한 사이즈다.

런던의 헤롯백화점에서 들었던 인상과 매우 비슷.

 

내부에 들어가니 그래도 나름 콤팩트하고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았다.

그보다도 한 세기 넘게 영업중인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은 중국인들이 많지 않고 전체적으로 사람이 적어 쾌적했다.

 

 

맛있겠다 싶어 찍은 사진

그냥 쭉 들러보다

다이어트 콜라 페트병만 사고 나왔다.

 

나오는 출구에서 무언가를 홍보하는 중년 아저씨를 만났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언가를 내게 요구했고

알고보니 콜라 한 모금만 달라고..

그래서 줬더니 입대고 마신다 ㅡㅡ

얘기를 나눠보니 자기는 루마니아에서 왔으며

어린 딸 사진을 갑자기 보여주며 자길 좀 도와주란다.. 뭐 금전적인걸로 겠지?

그렇게 나도 돈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떠나보냈다.

 

 

나는 쇼핑을 좋아하지 않고 에펠탑도 이미 질릴 정도로 많이 봤기 때문에

사실 파리에서 갈만한 곳은 크게 제한적이었다.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줄 기다리는 것도 매우 싫어했기에

루브르나 베르사유엔 갈 생각도 안했다.

오르세나 오랑주리같은 미술관도 갈 법 했으나 2년 전에 갔다는 이유로 리스트에서 빼버렸다.

 

다행히 난 건축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 고등학생 때 북경에 3개월 있었을 때도 기이한 디자인의 cctv 본사 건물을 보기위해 왕징에서 혼자 시내까지 나갔었고,

유명 도시를 갈 때마다 건물들을 보며 나름 희열을 느꼈다.

대학에 가서는 도서관에서 종종 건축과 관련된 두꺼운 책을 빌리며

건축학과에 가지 못한 내 한을 조금 풀었던 것 같다.

 

파리는 19~20세기에 걸쳐 수많은 예술가들이 살다간 곳으로 건축가도 예외는 아니었고,

근대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 꼬르뷔지에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살았던 곳과 그의 대표 건축물로 꼽히는 곳이 파리에 있었고

주저없이 찾아가기로 했다.

우선 처음 간 곳은 16구에 위치한 '빌라 라호슈'로, 그가 설계한 건물이다.

아마 학생할인이 되어서 반 값에 볼 수 있었다.

 

빌라 라호슈는 정말 주거단지에 위치해서,

지하철역에서 나와 목적지까지 걸어가는데 정말 조용하고 한적했다.

 

 

전공자가 아니라 정확한 디테일을 찾아낼 수는 없었지만

한 시간 가량 둘러보며 정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거의 한 세기 전에 만들어진 건물인데

2019년에 봐도 이토록 세련됬다니.

마치 내가 현대미술관에 있는 것 마냥 작품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르꼬르뷔지에가 세운 원칙들 중 필로티 형식과 옥상 정원이 있다는데

빌라 사보아와 빌라 라호슈에 똑같이 적용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천재란 어떤 것인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당대에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최초로 시도한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 결과물까지 대단하기란 매우 드물다.

하지만 바우하우스나 이들 건축가들의 작품을 보면 오늘 날 까지 우리 삶 속의 디자인에 깊게 뿌리내려 영향을 주고 있다.

 

 

모처럼 날씨도 좋아 기분좋게 길을 나섰다.

16구는 파리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데

서울의 한남동이나 청담동 같은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뭐 강남에도 낙후된 곳은 있으니 내가 부촌을 제대로 못본것이겠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시작하기 전 3분 정도 

sidney bechet의 si tu vois ma mere와 함께 파리의 영상이 흘러간다.

그 장면들 중 한적한 주거단지를 배경으로 덤덤히 서있는 에펠탑이 나오는데

여길 한 번 찾아가 보고 싶어 구글링을 했고 Magne Paul 이라는 곳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위치를 보니 그냥 샤요 궁 바로 옆;;

 

생각보다 붐빌 줄 알았는데 한적했고

그나마 있던 관광객들도 우연히 지나가다 보물을 발견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지나가다가 특이해서 한 컷

 

 

여긴 아마 palais de tokyo 지나면서 나온 것 같다.

 

이후 버스를 타고 호스텔로 돌아갔고

로비에서 멍때리고 있다가 대만에서 온 남자를 만나 반갑게 얘기를 했다.

타이완 넘버 원이라고 외쳐주고 내가 아는 중국말을 좀 하니까 되게 좋아했다.

대만에 있는 반도체 기업에서 일하다가 퇴직하고 세계여행 중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소중한 2년을 낭비해야했던 군대가 극도로 미웠다.

 

2학기에 있을 하이버디4기(교내 외국인 교환학생 교류 프로그램)에 선정됬다고 들어서

그날 밤에 느려터진 게스트하우스 컴퓨터로 짝 지어진 친구에게 페메를 보냈다.

그 친구도 프랑스인이었는데 내가 파리에 있다고 하자 매우 놀라했다.

비록 그 친구는 서울에 있었지만 서로의 뒤바뀐 처지에 신기해하며 내게 관광객들은 모르는 파리 맛집을 알려주었다.

 

신기한건 걔는 학교이름에 에콜이 붙는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엘리트인데(그랑제콜 출신)

왜 한양대로 교환학생을 왔는지.. 울 학교 국제홍보팀이 열일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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