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미니, 루비콘 강,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 (20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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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사실 시차적응이 안되어

새벽 세시에 일어나 그냥 누워있었다.

 

감사하게도

외국에서 몇번 새해를 맞은 기억이 난다.

30대의 첫 해를 이렇게 외국에서 가족과 함께 맞이할 수 있어 뜻 깊었다.

 

일출시간이 되어 방에서 연결된 발코니로 나갔다.

 

새해 첫 일출

하지만 해무로 인해 일출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ㅜㅜ

인피니티풀

리미니가 이태리의 속초라고 하는데

여름만 되면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이 수영장도 여름을 위해서인거겠지...?

 

가족들도 이미 5시경부터 일어난 상태라 

8시 조식타임이 되자 바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아침에 종업원이 테이블을 다니며 커피주문을 받고

머신으로 내린 커피를 나눠주는데

이태리인만큼 에스프레소를 시켜

로컬마냥 설탕을 타고 원샷했다.

생각보다 안뜨거워서 다행ㅎㅎ

샤갈st 그림
이태리하면 빼놓을 수 없는 소나무
호텔 코랄로

갈 길이 바빴기 때문에 얼리 체크아웃을 했다 (?)

 

새벽 세시가 다되도록 시끌벅적하더니

새해 아침은 고요 그자체였다.

우린 차를 타고 리미니 시내를 가 유료주차장을 찾아 주차를 했다.

공휴일이라 그런지 주차기계가 말을 안들었고

혹시나 산책 중인 로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알 수 없는 영어를 하며 그냥 대도 괜찮을텐데 자긴 진짜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운에 맡기기로 하고 시내 구경을 하러갔다.

매달린 산타

리미니는 블로그에 검색해봐도 잘 나오지 않아서

엄청 유명한 attraction을 기준으로 그냥 돌아다니며 

맘에드는 곳을 들르는 전략을 세워야했다.

 

 

왠 성당이 있길래 냉큼 들어가보았다.

Tempio Malatestiano

작은 도시에 비해 성당 크기가 대단했다..

당시 종교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석조 건물을..!

천장을 보면 저렇게 만들어져 있는데

당시 아치, 구 형태로 지붕을 올리는 기술력이 부족하여

함선의 구조를 차용했다고 한다.

찾아보니 800년 경에 지어졌다는데 엄청 대단하당..

 

 

막스마라 매장이 땋 있는걸 보면 그렇게 엄청 소도시는 또 아닌거 같기도 하다.

 

리미니 중앙광장의 인조 트리

 

줄리우스 시저

리미니는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넌 뒤

병사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한 곳이라고도 한다.

 

파스꾸찌

 

중앙광장에서 좀 걷다보면 티베리우스 다리가 나온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에 착공해 티베리우스 황제 때 완공된

로마시대 전성기에 지어진 다리이다.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다리를 건너면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마을

경복궁 옆 서촌 느낌이었다 ㅎ

이 동네가 바로 이태리의 유명한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고향이라 한다.

왠지 호텔 방에도 감독의 사진과 그의 페르소나인 마르첼로의 사진이 벽지로 되있는가 하면

전 날 불꽃놀이를 본 공원 이름도 Parco Federico Fellini 였다.

 

본의 아니게 20대 초중반 때 펠리니 감독의 영화 중

길 (La Strada)

8과 1/2 (Otto e mezzo)

달콤한 인생 (La Dolce Vita)

이렇게 세 개를 봤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보다 영화 음악감독인 니노 로타의 사운드트랙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티베리우스 다리

 

이후 라벤나라는 도시로 떠났다.

 

리미니에서 라벤나로 가는 길목 중간에 루비콘 강이 흐르는데

로마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빠는 이를 놓칠리 없으셨다.

 

카이사르가 도하한 지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진 않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구글지도에 의존한 채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접근성이 높은 지역을 향해 갔다.

 

사이프러스 나무. 이게 이태리지!

내가 생각하는 이태리 스테레오타입이 나오자 또 사진을 찍었다 ㅎ

 

 

루비콘 강 근처에 다다르자 주변은 말 그대로 시골 풍경이었다.

그런데 강은 커녕 물가도 보이지 않자

옆에서 잔디를 깎고 있던, 족히 50대는 넘어보이시는 아저씨한테 물어봤다.

당연히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셨고, 설마하는 심정으로 루비콘 하니까 그제서야 아~ 하면서 웃으셨다.

그리고 외딴 길을 가리키며 저쪽으로 가라고 했던 것 같다.

가면서 내가 veni vidi vici?라고 했는데 못알아 들으셔서 슬펐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라틴어를 말한거라 내가 봐도 어이가 없다.

 

시골길을 50m정도 걸어가니 작고 가느다란 물길이 나왔고

이게 루비콘강임을 직감했다.

 

졸졸..

아마 하류로 갈수록 폭이 점점 넓어지겠지만

루비콘 강은 강이라기 보다는 작은 내천, 개울에 가까웠고

농업용수로 이용되기에도 무색한, 그냥 방치된 물길이었다.

 

기원전,

카이사르는 갈리아에서 총독임무를 마치고 로마로 복귀하는 길에서

자신과 함께한 10군단 부하들에게 쿠데타라는 원대한 포부를 밝힌다.

그러고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강을 건넌다.

 

당시 지배계급인 로마 원로원을 향한 전면승부는 전례없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은 도박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동안 루비콘 강이 카이사르의 엄청난 결심과 걸맞은,

드세고 힘찰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이러한 이미지가 그의 영웅적인 서사를 더 돋보이게 해줄테니까)

 

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 위대한 결단의 출발점으로서의 루비콘강은

작고 볼품없으며 초라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떤 일이건, 시작부터 대단할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은 결과를 가지고만 판단하기에

이렇게 미약했던 초기의 사건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나 역시 성공한 사람들의 초라했던 시절은 간과한 채 

그들의 결과만을 가지고 부러워했다.

허나 역사는 이렇게 작은데에서 부터 써내려가진다.

졸졸 흐르는 루비콘 강에서 부터,

집안 차고에서 부터,

말 구유에서 부터.

etc..

 

현재 삶이 못마땅하더라도

그런대로 스스로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가는게 중요함을 깨달았다!

내 인생이 가지는 벡터의 크기에서 자유로워지자..(?)

 

 

드뎌 라벤나에 도착했고

반나절 정도만 머물 계획이어서

시내 외곽에 주차한 채 도심으로 걸어들어갔다.

 

라벤나 중앙광장의 트리

당시에는 멋져보여서 사진찍었는데

지금와서 보니 ... 흠냐

 

유럽에서 종종 보는 약국표시

점심은 특이한데서 먹고싶었으나

새해 연휴라서 많은 곳이 영업을 하지 않았고

결국 중앙광장의 티피컬한 이태리식당에서

라구, 깔라마리, 피자를 먹었다

 

 

특이해서ㅎ

저렇게 보도에 경사가 져있는데

비가올 때 배수가 용이하게 설계되었다.

 

 

라벤나가 여타 도시들에 비해 특별한 점은

동서 로마 분열 이후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는 408년 수도를 밀라노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그 후의 서로마 황제들도 이곳에 눌러앉아 제국을 통치했다. 당시 라벤나는 5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도시가 늪으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가 용이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도시의 항구와 동로마와의 해상 교통이 좋았기 때문에 수도를 이곳으로 옮긴것으로 보인다. ... 이하 생략

라고  나무위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암튼 쇠퇴기의 서로마제국 수도로써 기능을 한 도시였고

이후 게르만족, 고트족에 의해 점령당하다가

동로마 제국 시절 다시 수복되어 이탈리아 반도 통치의 거점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오래되고 역사에 이름을 알린 도시라 그런지

라벤나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가 여럿 있었고

그중 단연 산 비탈레 성당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끈다.

 

Basilica of San Vitale

무려 서기 547년에 지어진,

1500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온 대단한 인류의 유산이다.

이 성당이 지어졌을 당시면 지금 현재보다

지금은 폐허로 변해버린 팍스 로마나 시절이 더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세월의 받아들이기에는 보존이 잘 되어있었고 낮설지많은 않은 건축양식이다.

 

 

건물의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한 아치

 

건물 외관도 대단하지만

내부에는 라벤나라는 도시를 모자이크의 대명사로 알리게 한 장식들로

실내가 꾸며져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내부에는 동로마제국을 부흥시킨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모자이크가 있다.

학창시절 역사 수업 때 교과서에서 잠시 보고 지나간 그림을 

이렇게 예기치 못한 순간 마주하니까 감회가 새로웠다.

저 모자이크 속 인물이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고 영토를 확장했다고 공부했던 기억..

 

천장도 모자이크로 되어있다.
비잔틴 양식의 12제자
19세기에 다시 그린 천장화라고 한다
모세, 아벨, 멜기세덱, 이사야

이렇게 수많은 성경 스토리가 성당 내부에 각인되어 있다.

 

이 성당은 저 노을과 얼마나 마주했을까.

 

 

산 비탈레 성당 옆으로는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가 자리하고 있다.

이 모든게 수작업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모자이크 그림을 만들라고 하면 

일일히 색종이를 가위로 오리고

하나하나 공들여 풀로 붙여야 했던 매우 성가셨던 기억이있다.

 

 

city of mosaic

이런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도시 미관을 완성시키는게 아닌지??

 

 

 

이태리에 온 만큼 피스타치오 젤라또 하나를 먹어봤다.

 

 

모자이크로 된 가리발디 광장 이정표?

 

어느 덧 해가 지고있었고

다음 목적지인 파도바까지 가려면 두시간정도 차로 달려야했기에

아쉽게도 떠나야 했다.

 

그리고 라벤나를 떠나기 전 한 곳을 더 들렀다.

 

Teodorico Mausoleum

 

서로마를 멸망시킨 게르만 용병장인 오도아케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테오도리크의 영묘가 있다.

그의 업적은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특이한 것은

영묘 상단의 둥근 부분이 통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기술력으로 어떻게 저 무거운 돌을 건물 위에다 얹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고인돌처럼

1. 주변에 흙을 쌓은 뒤

2. 돌을 올리고

3. 다시 흙을 치운게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영업시간이 종료되어 주차장에서 멀찍이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엇다 ..!

그래도 언젠간 다시오겠찌 :)

 

라벤나에서 파도바까지 가려면 중간에 페라라라는 도시를 거쳐서 가야한다.

그런데 라벤나 -> 페라라로 가는 도로 포장상태가 울퉁불퉁 진짜 너무 안좋아서

운전 시 피로감이 장난아니었다.

시속 80으로만 달려도 뭔가 타이어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되는 수준!

이태리의 한 단면을 보았다..

 

페라라의 한 휴게소

휴게소에 잠시 들려 뭐 좀 마시려 했지만 

어제 볼로냐에서보다 세 배 비싼 콜라를 마주하니 자연스레 갈증이 해소되엇다ㅋㅋㅋ

여기서 처음으로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볼 수 있어 반가웠는데

그러고보면 아빠 덕분에 아직까지 유럽을 가이드와 다녀본 적이 없다.

 

어릴 적 항상 아빠의 손에 이끌려 온 가족이 유럽 곳곳을 다닐 수 있었고

당시는 동양인이 많이 없던 시절이라 현지인들의 온갖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기억이 난다.

오늘날에도 이태리의 작은 소도시들을 렌트카로 다니는 우리 가족이 왕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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