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I, 파도바, 몽클레어 빌리지, 라이언에어, 스톡홀름 (20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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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바 외곽에 위치한 크라운 플라자 호텔에서 잤다.

몰랐는데 여기도 IHG그룹 소속이었다.

 

잠이 안와서 새벽에 날씨를 봤는데,,

Poor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만 유독 공기가 안좋은 이유는.. 공업지대라 그런가..?

 

역시나 시차적응이 덜 되어 5시경에 일어났고

조식을 주는 시간이 되자마자 식당으로 입장했다.

 

 

QT와 함께하는 조식..

 

내가 젤 좋아하는 브리 & 파인애플 조합

 

오늘 일정이 꽤 바빴기 때문에 서둘러 움직여야 했기에

아직 해가 덜 떴음에도 시내로 나갔다.

 

호텔 옆 ENI(Ente Nazionale Idrocarburi)

이탈리아의 도로를 다니다보면 각양각색의 주유소가 눈에 띄는데

그 중에서도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단연 eni 였다.

(21년에 석유의 역사를 알고싶어 대니얼 예긴의 황금의 샘을 읽었는데

그 중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가 eni를 설립한 엔리코 마테이였다.)

 

자동차 바퀴 4개 + 운전자 두 다리 = 6개의 발이달린 멍멍이

1950년대 이후,

당시 엑손, 쉐브론, BP, 로열더치쉘 등 석유기업들이 담합과 로비로 판을 치던 시대에

수에즈운하, 이스라엘 전쟁 등 서방과 중동의 비화를 틈타

그동안 석유업계에서 한 발 늦었던 이탈리아가 움직이게 된다.

이탈리아 국영회사인 eni는 현지에 매력적인 지분율을 내세우며 메이저 업체들의 공백을 빠르게 채웠고

이 모든 공적의 배후엔 엔리케 마테이가 있었다.

 

같은 서구 사람이었지만 석유업계에서 눈엣가시였던 그는

우연의 장난인지 얼마 못가서 항공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이에대해 CIA가 사주한 일이다 하는 식의 음모론이 생길 정도로

마테이의 행보는 메이저기업 뿐 아니라 국가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공격적이었다.

(석유라는게 단지 사기업의 이해관계로 움직이는게 아닌 여러 나라들의 정치, 외교의 산물이다보니..)

비록 그는 안타깝게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그의 노력을 발판으로 eni는

프랑스의 토탈과 함께

영미권 국가가 아님에도

정유업계 슈퍼메이저 자리에 입성하는 결실을 보여준다.

석유가 나지 않는 국가가 이렇게 전략적으로 산업을 키운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주차장소 기억을 위해 찍은 사진

파도바 시내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고 돌아다녔다.

아침이라 그런지 파도바는 안개가 자욱했다.

 

 

산마리노 광장 감성?
이태리 전성기 시절 영토

이태리 + 리비아 + 에티오피아 + 소말리아

 

특이한 원소기호가 적힌 카페도 지나갔는데

화학1 수강자로써 직감상 카페인의 원소기호가 아닐까 추측.

(지금와서 찾아보니 맞음! 화학식 : C8H10N4O2)

 

 

여행 중 이렇게 예기치 못한 광경이 나올 때 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여기도 회랑

 

목적지는 성 안토니오 성당이었는데 가는 길목에

Isola Memmia

이렇게 이쁜 광장을 만났다.

원래 이곳에서 웅장한 성당이 뒷배경으로 보여야 하지만

안개때문에 겨우 근거리 건물만 식별이 가능했다.

저 물길은 강줄기나 운하인줄 알았는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길이었다.

 

카를교 마냥 성자들의 석상이 서있었는데

누군지 1도 모르기에 그냥 지나쳤다.

 

성당 입구
멍멍이 출입금지
파두아? 파도바?
실내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정도로 웅장

실내에는 영화에서나 보던 엄숙한 신부님이 빨간 사제복을 입은 채 돌아다닌다.

 

이 성당에는 안토니오라는 성인의 이름이 붙었는데

그 당시 치유의 기적을 보여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성당 한 켠에는 안토니오가 사용했던 물건들,

옷, 책, 심지어는 유해까지 귀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우상숭배 아닌지..

성 안토니오의 유해

실내에서 실제 미사가 거행되자 밖으로 나왔다.

 

성당에 붙어있는 수도원

 

Basilica di Sant'Antonio di Padova

성당을 다 보고나서 주차시간이 다되어 다시 돌아갔다.

 

트리
800주년

파도바 대학은 22년에 800주년을 맞은 대학으로써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교수였다고 한다..ㅋㅋ

 

아빠가 유서깊은 카페가 있다고해서 갔다.

상호명은 카페 페드로키인데 1831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하지만 피렌체에서 이미 1600년대에 오픈한 Gilli를 갔었기에

나름 신생카페로 보였다(?)

여기 시그니처가 민트커피라고 하지만

나는 그냥 에스프레소로 선택..

 

부모님

20분정도 앉아있다가 나왔다.

 

 

암사자상

카페 앞에는 이렇게 이국적으로 꾸며져있다.

 

 

배수시설

 

요금을 추가해서 주차 시간을 연장한 뒤

바로 근처에 있는 스크로베니(Scrovegni) 경당을 보러갔다.

 

이곳은 사전 온라인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을 할 수 없는 구조이기에

한국에서 이태리어를 구글번역해가며 겨우겨우 예약했었다.

 

어느 도시를 가도 보이는 주세페 가리발디

 

 

이렇게 10분 가량 소개 및 다큐 영상을 시청하고 들여보내 줌.

 

 

블루

스크로베니가 뭔가 했는데 사람 이름이었다.

단테의 신곡에 악인으로 등장한 본인 아버지(당대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죄를 덜기 위해

면죄부를 사는 심정으로 이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내부에는 조토(Giotto)의 벽화로 꽉 메워져 있는데

중세시대 무표정으로 일관된 인물화에 처음으로 감정이 드러나게 그린 장본인이라고 한다.

 

난 저런 설명도 설명이지만 사진으로본 퍼런 천장이 너무 예뻐서

꼭 보고싶었다.

 

좌 천국 우 지옥
중세 첫 키스신이라고..

15분간 관람시간이 주어지는데 

나한텐 충분했다.

파란 천장이 예뻐서 계속 위에보다가 목 빠지는 줄.

 

베니스 마르코폴로 공항에 두 시 비행기를 타고

스톡홀름으로 가야했으므로 서둘러 파도바를 떠났다.

 

파도바는 지금껏 돌아다닌 도시 중 규모가 꽤 컸다.

명품 매장도 여럿 보이고 현대 건물도 많고..

아마 베니스 근처이기도 하고 이 일대에 인구가 꽤 되어서 그런건가보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서 조금만 우회하면

몽클레어 본사에 갈 수 있다.

공장과 아울렛, 그리고 식당도 함께 위치해 있어

뱅기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꼭 들리고 싶었다.

(몽클레어는 프랑스 태생 브랜드로 알고있었는데 2003년에 이태리 기업가가 샀다고 한다.

내가 이 브랜드를 익숙하게 인지하게 된지 근 10년 다되어 가는것 같은데

이 브랜드의 명품화 및 대중화가 전부 이태리 기업의 노력의 산물이었다.)

자차없으면 오는게 불가능에 가까운 위치..

구글맵스에 찍어봐도 찾기 좀 힘들었다.

약간 '이런데에 이게 있다고..?'라고 의아할 정도의 풍경에 갑자기 몽클레어 빌리지가 나타난다.

 

실내에는 사람이 꽤 있었고

중국인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한국인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궁디팡팡

가격은 저렴했지만! 생각보다 건질 건 없는 아울렛이었다.

이미 이쁜 디자인은 오전에 다 나간다고 한다ㅜㅜ

그래도 가격이 괜찮았기에 몇 벌 골라서 샀다.

 

매장

 

애기

옆에는 식당이 있었는데 몽클 캐릭터가 자리잡고 있는거에 비해

음식 가격은 동네 가게 수준이어서 부담스럽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메뉴는 딱 예술의전당에 위치한 카페 스타일.. 빵에다 피자에다 ㅋㅋ

 

고생을 좀 더 하더라도 렌트카로 자유도 높은 여행을 할 수 있어 좋았다.

 

 

12시가 다되어 공항으로 출발했는데

너무 여유를 부린거 같아 뒤늦게 후회를 했다.

베니스는 이태리에서도 생각 이상으로 큰 관광지라

수 많은 여행객들이 이 공항을 통해 오고가는데,

마침 새해 연휴이기도해서 좀 일찍와야 안전하게 세이브가 가능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람이 많은게 체감되었고..

공항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많은 사람들과 내 착잡한 심정이 오버랩되며 오랜만에 혼란스러움에 빠졌다.

 

정신을 가다듬은 뒤 짐을 붙여야 했기에 카운터를 찾았다.

근데 이미 길게 늘어져 있는 줄..!

난 가격적인 측면에서 라이언에어를 선택했는데

카운터 운영을 너무 적게했다 ㅜㅜ

!!..

 

하지만 내 뒤에 줄을 선 스웨덴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과

비행기가 1시간 가량 지연된 사실을 알고나서 한시름덜었다.

 

출국 수속까지도 줄이 꽤 있었는데

베니스 공항 측의 따뜻한 신년인사를 보며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가 되었는데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항상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꽤 늦게 들어가서 20분 정도 흐르자 보딩시간이 되었다.

 

역시나 도보입장
실내 / 내 캐리어 직관

 

스톡홀름까지는 세 시간 가량 걸리는데

인천에서 삿포로 거리정도 되는 것 같다.

 

승객 대부분이 베니스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스웨덴인들이었따.

알프스 산맥을 넘어

시대가 발전하며 비행기 VOD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이런 저가 항공사를 탈 때마다 뭘 해야할지 난처하다.

그래도 공항에서의 긴장이 확 풀리며 잠이 쏟아졌고 

졸고 깨는 걸 반복하다보니 스웨덴 알란다 공항에 도착했다.

(알란다라는 이름이 예뻤다. 알란다~)

 

겨울이고 북유럽이었지만 의외로 밖에는 비가 내리는 중...

아무튼 20년만에 북유럽에 발을 들였다.

 

어렸을 때는 몰라서 지나쳤을,

저런 공항 안내판을 보면서 이게 북유럽 디자인이구나 호들갑을 떨었다.

사실 왠만한 공항이라면 저런 디자인일텐데 내 안의 사대주의가 또 난리를 쳤다 ㅋㅋ

 

이런 사소한 디테일만큼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일거라면서 스스로 설득 ㅋㅋ..

 

그리고 이름모를 북국의 도시들로부터 도착한 비행편들을 보며

다양하고 미지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류에 대한 경이를 느꼈다.

저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갔고 후에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먼 우주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를 상상할 때 드는 느낌과 같은 영역의 feeling.

 

동행분을 6시에 만나기로 했지만 비행기 지연으로 늦어지게 되었고

나로써는 호스텔에 짐을 두고 가야했기에 시내까지 제일 빠르게 가는

알란다 익스프레스를 타는 수 밖에 없었다.

 

볼로냐에서와는 달리 정말 친절하고 간편한 공항 내 싸인을 보고

알란다 익스프레스로 곧장 찾아갈 수 있었고

무려 거금 320kr(약 32유로)을 내고 탔다. 거의 편도에 4만원?! ㅠ

 

시작부터 북유럽 물가의 매운맛을 볼 수 있었고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이런 방식으로 외지인에게

본인들의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드러내는구나 했다.

 

편도 4만원은 그래도 심했다ㅎ

그동안 나리타, 히드로 등등에서 가장 싼 방법으로만 다녔었는데 

스톡홀름와서 그 유구한 전통이 깨졌다.

그래도 돈이 좋은게, 18분만에 스톡홀름 중앙역으로 데려다 준다.

 

 

중앙역 밖을 나서니 밖에는 비가 계속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우산이 없던 나는 겨울비를 맞으며 호스텔로 향했다.

숙소가 역 근처라 금방 도착할 수 있었고 굉장히 깔끔한 느낌이어서 더 좋았다.

같은 방의 영어1도 못하는 프랑스인과 어색한 인사 및 대화를 마친 뒤

우버를 타고 약속장소인 감라스탄으로 갔다.

마음 같아선 그냥 침대에 누워 자고싶었는데 ㅋㅋ.. 피곤해 죽을뻔

 

우버 기사님은 소말리아 사람이었는데

이곳 스톡홀름이 좋지만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외지인으로 살아가기 녹록치 않은가 보구나..

 

 

스웨덴에 온만큼 티피컬한 행동을 해보고 싶었기에

그 일환으로 사슴고기를 꼭 먹어보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Krip in, gästabud 레스토랑이 유명한 것 같은데 연휴라 영업을 하지 않았고

Ardbeg Embassy라는 곳이 열어서 이곳 식당 앞에서 동행분을 만났다.

스카겐, elk미트볼, reindeer고기

 

오래 기다리게 해서 너무 죄송했으므로 내가 사기로 했다.

음식은 거부감이 없는 맛이어서 남김없이 먹었다.

(근데 계산서를 볼 때 거부감이 확 생겼다..)

 

순록이나 사슴이 향이 꽤 강해서 다 못먹고 남겼다는 사례를 보곤 걱정했는데

본의아니게 비위가 강한 나로써는 괜찮았고 그냥 고기맛이었다.

 

 

동행분은 내 또래로 이곳에서 직장을 다니는 커리어우먼이었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얘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갔다.

자리를 옮겨 대화를 더 하고 싶었지만 대부분 식당이 영업을 마감하고 있었고

밖에는 비가내려 거리를 걸어다닐 수도 없었다.

 

결국 감라스탄에서 중앙역까지 코트를 뒤집어 쓰고 걸어갔는데 상황이 정말 웃겼다.

외국의 도시 한복판을 비를 맞으며 정신없이 가는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그만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ㅎ

춥고 축축하고..

 

우린 중앙역 의자에 앉아 편의점에서 산 음료를 마시며 진지한 대화를 나눴고

이후 내가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 그분은 담날 출근을 해야했으므로 마무리했다.

 

 

호스텔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안락함이 느껴져 자려 했지만

같은 방에 있던 알제리계 프랑스인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으며 신디사이저(대체 왜?)를 들고 있길래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는 파리에 있는 학교의 건축학과 학생이라고 소개했는데 

나 역시 건축에 관심이 많기에 내가먼저 예전에 파리 여행갔을 때 Poissy의 빌라 사보아에 간 것 부터 르꼬르뷔지에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는 르꼬르뷔지에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는데 (처음 들어보는 견해였다.)

현대건축의 아버지에 대해 거침없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자 흥미가 생겼다.

그는 Unité d'habitation를 예를 들며 르꼬르뷔지에가 너무 효율을 추구한 나머지 인간의 편의성은 간과했다고 한다.

 

마르세유의 Unite d'habitation

 

또 알제리에 추진하려했던 프로젝트를 알려주었는데

어느 날 르꼬르뷔지에가 배에서 알제(알제리 수도)의 해안선을 보며

해안선을 따라 거대한 흰색 구조물을 벽처럼 길게 늘어뜨리고 그 안에 모든 알제 시민을 살게하자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가 식민주의 사상에 입각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인지, 아니면 순전히 예술적인 견지에서 떠올린 아이디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지금의 네옴시티가 아니냐 물어보니 exactly the same이라고 한다.

 

Plan Obus

누군가는 콘크리트 정글이다, 누구는 현대판 유토피아다 라고 평가를 하겠지만

저 안에 살아가는 당사자라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과연 훗날 네옴시티 거주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그간 르꼬르뷔지에의 다양한 건축물을 듣고 봐왔지만 이런 프로젝트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는데

(군함도 이면에 존재했던 아시아 강제노역자들의 스토리를 서양인들이 잘 모르듯이)

지배/피지배의 입장에 따라 볼 수 있는 시각의 범위가 전혀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혹시 프랑스에 대한 악감정이 있냐 물어봤지만

정부에 대해서는 그럴지 몰라도 프랑스인들로 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있기에 좋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몇 제곱미터 이내이면 건축가없이 집을 지을 수 있는 법이있어

본인들의 설 자리가 많이 없다고 했다. (생각보다 면적이 일반인에게 관대해서 놀랬다.)

그래서 졸업하면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30분 넘게 열띤 대화를 나누다 화기애애 마무리되었고

그 뒤 혼절해서 모처럼 긴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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