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여행기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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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간의 인턴기간이 막바지에 치닫을 즈음..

한 번은 휴가라는걸 만끽해보고 싶어서 계획하게된 삿포로 여행..

심지어 엔화도 900초반 대!

원래 도쿄를 가려했지만 웬걸..

거리 상으로 더 먼 삿포로 비행기 값이 훨씬 쌌다.

 

아직은 이른 겨울이지만

홋카이도에 가면 pure한 겨울을 맛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금토일 2박3일 여정으로 가게 된 삿포로.

 

저가항공사의 설움인지라... 오전 7시 매우 이른시간에 출발.

일찍 일어나 첫 차 타고 가면 피곤+빠듯할거 같아서

전 날 밤 늦게 공항에 갔다. 

수하물 부칠 것도 없었기 때문에 미리 체크인 하구

목 좋은데로 가서 노숙 감행.

잠 자니까 은근히 추웠다.

 

1 터미널 탑승동 어딘가에 누워 바라본 천장

그렇게 존버?하니 시간은 가고 드디어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 탑승.

 

서울은 지금 막 깨어나는 중..(롯데타워)

3시간 정도 날아가야 했는데 일본 치고는 거리가 멀었다.

착륙 전 밖을 내다보니.. 삿포로는 이미 Winter Wonderland.

온통 눈밭이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도착.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눈 맞으면서 공항으로 걸어간 것은 함정. 버스라도 태워주지.. LCC의 설움.

 

그렇게 신치토세 공항에서 열차를 타고 삿포로역에 도착.

눈이 생각보다 펑펑 내려서 곧바로 편의점에 가서 일회용 우산 겟.

 

체크인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우선 바로 근처에 있는 홋카이도 대학교로 향했다.

Boys Be Ambitious로 유명한 홋대 설립자

방수 단화를 신고와서 다행이지..

눈 때문에 걸어다닐 때마다 큰 동작으로 걸어야 해서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쉽게 볼 수 없는 눈세상이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겼다.

공포영화 분위기

생각보다 교정이 매우 넓어서

끝에서 끝까지 정복하려는 야욕은 고이 접었다.

 

예전 군대에 있을 때 한창 일본 교환학생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그 중 눈에 들어온 자매결연된 학교가 도쿄공업대, 와세다, 나고야, 오사카대, 홋카이도대 이 정도?

그렇게 처음 홋대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낙농업?에 강하다고 들었다..

뭐 명색이 국립대이니 어느정도 수준은 갖췄겠지?

 

눈이 그칠 기미를 안보여서 다시 삿포로역으로 피신했고

잘되어있기로 유명한 지하통로를 이용하여 도미인 호텔로 움직였다.

지금보니까 호텔 사진을 안찍었는데...

엄청 막 저렴하지 않은 만큼 잘되어 있었고 특히나 온천이 잘 되어있었다.

 

근처에 수프카레가 유명한 집이 있어서 갔더니..

한국인 50%에 나머지 일본인, 중국인, 대만인 이렇게 대기 중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덕분에 40분 정도 기다려서 먹을 수 있었다.

가격대비 나쁘지 않은 수프카레. 웨이팅은 극혐

다 먹고나서

눈 내린 삿포로 거리를 걸어다녔다.

눈도 그쳐가지고..

바닥이 얼음으로 코팅되어 있어 매우 미끄러웠지만

그래도 재밌어하며 걸음.. 오도리 공원도 가고

날씨가 춥지만 서울보다는 따뜻했기에.. (정말 이상했음)

 

얼마전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의 도움으로 료 후쿠이라는 재즈 뮤지션을 알게됬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자주 들었었다.

작고한지 얼마 되지않은 분인데 마침 그 분이 주로 활동했던 재즈바가 삿포로에 있어

야심차게 들으러 가려고 했지만!

입장료 + 비싼 칵테일 가격은 나 같이 보잘 것 없는 인턴에게는 부담이었고

건물 앞 안내판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했다.

4층 슬로우보트 재즈 바

다음 날,

일본의 대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사찰이 삿포로 근처에 있다고 해서 굳이 복잡한 교통편을 찾고 헤메 가게되었다.

이름하야 Hill Of The Buddha.

지하철에 버스에.. 복잡복잡.. 게다가 온통 일본어밖에 없어서..

가는 도중 성지순례 온 인도네시아분들도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

안도 타다오의 Autograph
좌불상
출구샷
입구. 불상 머리가 살짝 보인다.

여름이 되면 눈밭이 온통 라벤더의 보랏빛으로 물든다는데..

언젠가는 가보게 되겠지?

 

안도 타다오는 그 유명한

빛의 교회, 물의 절(?), 오모테산도 힐즈 등등의 건축물로 익히 알고 있었으며

아시아인으로써 몇 안되는,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대입 때 건축학과 진학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당사자로써

지금도 세계 곳곳에 있는 주요 건축가의 건물들을 볼때면 가슴이 뛰고

이유모를 씁쓸함과 함께 깊은 인상을 받는다.

다른 평행우주에서는 건축가로 활동하는 나를 상상하며..

 

그렇게 왔던 길을 힘겹게 되돌아가

삿포로역 지하통로에서 우니동을 먹었다.

우니와 이꾸라의 자태를 보아라

맛은 있는데 가격과 양을 생각하면 또 먹고싶진 않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타루로 향했다.

한 시간 좀 안걸려서 도착한 오타루.

삿포로랑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않는 도시지만 (당연한걸..)

바닷가랑 인접해 있어서 운치가 있고 (운하 사진을 안찍었다.)

관광지로써 매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신기한 것은 지금은 영업을 하지않는 은행 건물들이 모여있는데

이 외딴 소도시에 어울리지 않은 고풍스런 건물들을 마주했을 때,

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에서 주인공이 모스크바의 버려진 궁전에 우연히 들어갔더니

화려했던 로마노프 왕조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처럼

불과 한 세기 전, 우리나라는 누려보지 못한 일본의 찬란했던 부귀영화가 내 눈앞에 선선히 그려졌다.

 

이 은행 건물들은,

19세기 말 부터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주변국, 특히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방을 하고

그에 대해 돈을 원활히 유통시키기 위한 일본의 적극적인 노력의 산실이다.

특히, 현재 서울에서 한국은행의 본사로 쓰이고 있는 건물 양식과 매우 흡사한,

일본은행(BOJ)의 오타루 지점 건물에서 한국어로 된 팜플렛을 보며 내부를 둘러봤을 때,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존경심과 대단함, 그리고 알 수 없는 열등감과 시기심이 생겼다.

 

그런 감상을 뒤로하고

남들처럼 르타오에 가서 무료로 쿠키 시식도 해보고

오르골 당에서 내가 좋아하는 멜로디를 찾아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

오르골당

무슨 자신감으로 사진을 이리도 안찍었는지... 뭐 언젠가 다시오겠지

 

다시 삿포로로 돌아오니 이미 해는 졌고

삿포로역 쇼핑몰에 있는 유니클로와 무지에서 한국보다 훨~씬 싼 값에 물건들을 샀다.

 

마지막 날인 만큼 삿포로에서 유명한 징기스칸 음식을 먹으러 갔다.

찾아본 곳들이 다 극악의 웨이팅을 자랑하는 곳이었지만

마지막 날인 만큼 그냥 기다리기로..

 

'라무'라는 곳에서 먹게 되었다.

1인 1화로. 직접 양파랑 양고기를 굽고

양념장에 찍어 밥이랑 같이 먹으니 맛있었지만 혼자여서 슬펐다.

요기도 한국인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1인 손님은 나 혼자라..

흠 그래도 맛있었기 때문에 또 오고싶다..  그 때는 혼자가 아닌 누군가랑..

 

다 먹고

그 유명한 스스키노 환락가도 걸어다녀보고

호객행위도 당해보는 스릴?을 즐겼다.

그런 문화가 불법인 한국과는 확연한 차이가 도드라지는 점이 매우 인상적.

무튼 호텔로 돌아와 온천에서 피로를 녹이고

콘비니에서 사온 삿포로 맥주와 안주를 먹으며 마지막날을 보냈다.

 

다음 날 점심즈음 출발하는 비행기라

일찍 체크아웃하고 나섰더니 까마귀 떼가 날 반겨주고 있었다.

까마귀 쉨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와는 달리

요놈들은 사이즈가 좀 커서, 걸어서 이동할 때도 성큼성큼, 날아다닐 때도 가히 위협적이다.

우리나라에선 흉조이지만 일본에서는 길조인 까마귀.

 

삿포로는 도쿄랑 비교해서 지방 도시로써의 한계점이 많이 보였지만

맨하탄 같은 격자형 계획 도시이다.

장담컨데 한 세대 전에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도시 외관이나 인프라를 보며

적잖이 놀랐던 것 같다.

서울에서 지방 광역시에만 가도 느껴지는 낙후되고 이질적인 분위기를 

일본에서는 느끼기 힘든 이유. 

 

 

무튼 짧은 휴가를 마치고

다시 회사로 복귀하여 무사히 인턴생활도 마치고

그렇게 2019년이 오고.. 복학을 하고

내 인생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정말 많은 고민이 드는 한 해다.

10년 뒤 나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사람이 될까. 결혼은 했을까. 살아는 있을까.

조금이라도 어릴 때 많이 흔들리고 아파해야지..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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