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여행기(20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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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친구, 후배랑 떠난

오키나와 여행.

 

오래 전 부터 봐왔던 츄라우미 수족관의 고래상어 영상

언젠가 오키나와에 가면 꼭 보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지만

결국 경로 문제 상 가지를 못했다... 생각보다 너무 북쪽에 위치해 있어서..

 

출발 전 오키나와 일기예보를 보니 아주 흐림과 낙뢰, 비가 한 주를 장식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한국이 장마라 좀 맑은 느낌을 원했는데 가서도 우울한 날씨를 겪을 생각에

여행가기 전 부터 매우 침울해 있었다.

뭐 나름대로 비오는 날의 해수욕도 나쁘지 않겠지?

안그래도 동행하는 친구들이 건장한 군필들이라 미친척하고 행동으로 옮기면 되서 상관은 없다..

 

LCC 중에서도 악명높은 피치항공을 타고 생각보다 금방 도착한 나하. 도착하니 저녁 7시가까이 되었다.

날씨가 한국이랑 상당히 비슷해서 딱히 불쾌한점은 없었다.

 

모노레일을 타고 시내로 나가

토마린 항구 근처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게하답게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로 붐볐고

마침 호스텔이 4주년이어서 게하 측에서 숙박객들과 합심하여 기념 떡을 만들고 있었다.

떡을 열심히 만들고 있던 프랑스 친구에게 굳이 쁘헝스 빻히 이러면서 반가운 척을 했다.

 

더 늦기전에 밥을 먹어야 해서 국제거리로 나가 

무심코 들어간 라멘집에서 기가막힌 라멘을 먹고(정말 돼지기름 걸죽한 라멘인데 너무 맛있었따)

맥날 아이스크림을 집어든 채 돌아왔다.

다음날 일정 브리핑 및 계획을 위해 다시 게하 게스트룸(?)에 돌아왔는데

이미 분위기는 무르익어 누군가가 틀어놓은 팝송에 맞춰 모두 떼창을 하고 있었다.

정말 서양애들의 인싸인싸한 분위기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내 입장에서는..

암튼 나도 아는 노래가 나올 때마다 같이 따라 불렀더랬다.

 

다음 날 근처에 위치한 수산시장에서 대충 회덮밥 비슷한 간장밥을 아침으로 먹고,

토마린항으로 가서 토카시키 섬으로 가는 배를 탔다.

바다 색깔이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청록색에 에메랄드색..

도대체 어떤 요인으로 인해 바다 색깔에 차이가 생기는지 모르겠다.

수심이나 바다 밑에 어떤 색의 모래가 있느냐에 따라??

 

아무튼 오랜만에 탄 배를 뒤로하고

정말 한적한 느낌의 토카시키 섬에 도착했다. 

마침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아저씨가 마중나오셔서

차를 타고 게하에 들리기 전에 섬 내에서 유명한 아하렌 비치로 향했다.(놀고나서 게하로 가는 코스)

 

아하렌 비치에 위치한 시설에서 필요한 장비(물안경, 오리발)를 빌린 뒤

정말 하와이나 타히티 같은 산호섬에서만 볼 수 있는 에메랄드 빛 바다에서

스노쿨링을 했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는 물론이거니와 경외감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자아내는 산호들까지..

또한 쉬면서 듣는 트로피컬 하우스에 점심으로 먹은 타코 라이스까지 모든 것이 완벽.

정말 국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분위기인건 확실했다.

그렇게 스스로 남태평양의 어느 산호 섬에 와있다고 정신승리를 하며 그 시간을 즐겼다.

 

(오키나와에 미군기지가 있어서 그런지 F-15기가 편대 비행하는 모습을 본 것은 덤..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다.)

와중에 사람도 별로 없다.

샤워를 마치고 향한 Kerama's Backpackers라는 게하.

스태프들은 러시아에서 온 젊은애들..

그리고 당일 방문객들도 다 서양 친구들이었다.

 

조용한 섬마을
한적한적 우리만 신남

짐을 풀고 토카시키 섬 항구쪽으로 걸어갔다.

골목골목 내가 생각할 수 없었던 일본 섬 마을의 풍경.

길거리에 무심코 세워져 있는 자판기와 돌담길.

한적한 순간을 가로지르는 오토바이 소리.

이토록 정적일 수가 없다.

 

항구 근처에 우뚝 솟은 섬이 있는데

리우데자네이루가 순간 생각이 났다.

빵 산과는 경사면에서 많이 차이가 나지만.. 그래도 모양이 비슷하니

보사노바 wave의 선율이 떠오름.. 한번도 안가봤으면서 이파네마에 있는 기분.

항구 근처의 어설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니

어느 덧 8시. 피곤하다던 친구들을 뒤로하고 혼자 게스트룸에 갔더니

외국인 친구 2명이 있었다.

원래 읽고있던 민음사 레미제라블을 마저 읽으려고 간거였는데

그들을 두고 차마 책을 읽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책은 그저 게스트룸에 들어가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았을 뿐일지도?

 

한 명은 자기 노트북으로 게임 삼매경이었고

또 한 명은 그걸 구경 중이었다.

오버워치 비슷해 보여가지고 오버워치 맞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비슷한 게임이라고 했는데 아마 발로란트였던 듯.

 

그렇게 대화를 시작해 구경중이던 사람과 본격 대화를 시작했다.

자기는 프랑스에서 왔고.. 이 게임하는 친구랑 여행중에 만나 같이 동행중이다...(게임하는 친구도 프랑스) 등등.

 

상대가 프랑스에서 왔다는걸 알게된 순간 

내가 프랑스에 대해 알고있는 모든 지식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시사적인 문제로는 노란조끼 운동부터 시작해서 마크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브렉시트, 영국 및 독일과의 관계, 시리아 난민 등등

문화적인 얘기로는 노트르담 성당이 불에 탄것 부터 시작해서 에디뜨 피아프, 프랑수아즈 아르디, 다프트 펑크 등등

정말 어설픈 영어를 주고 받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또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하며 어디에 사는지.. 빠히에 산다고?

파리에 대한 내 애정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자기는 파리가 왜 좋은지 모르겠다고.... 배가불렀어

신기하게도 파리지앵인 그는 에펠탑에 대해 별 감흥이 없다고 했다. chunks of metal이라고.. 흑

 

내가 나이를 물어보니 맞춰보라길래 25살 아니냐고 물어보니 좀 더 높이라고 했다.

27, 29.. 점점 높이니 자기도 포기하고 이내 34살이라고 고백했다.

아니,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사람에게 이렇게 터울없이 얘기 하다니.. 약간 충격이었다.

무언가 내 나이를 말하기 미안해지는..

그래서 동양권의 문화를 설명해주면서 나이가 서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해주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일찍 자러갔던 내 친구들도 합류하여 같이 얘기를 이어나갔다.

축구얘기가 나와 파리 생제르망 얘기... 월드컵 등등

그러고나서보니 외국친구 세 명이 더 합류했다. 캐나다에서 온 남자, 여자와 네덜란드 친구 한 명.

 

내가 먼저 네덜란드 친구에게 마리화나 가지고 있냐고 하면서 대화가 시작했다.(ㄹㅇ 너무 좋아하더라)

그러더니 자연스레 마약을 파는 데는 coffee shop이라고 부른다 하면서 의도치 않게 마약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내가 그럼 스타벅스에서 살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아니라고 함.. 이미 알고있었지만 드립을 위해 물어봄)

이후 내가 또 암스테르담에 있는 섹스쇼에 대해 물어보니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일본 메이드카페 등등 별의 별 얘기가 나왔다.

 

그러고나서 시작된 그의 dmt 체험기..

모든 사람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겪어봐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을 하셨다.. 흠?

 

경청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퀘벡출신 캐나다인한테 프랑스친구가 너네가 하는 불어는 솔직히 알아듣기 힘들다고 했을 때 얼마나 웃기던지!

 

서로 정확히 어디에 살고 무엇을 하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잘 모르더라도

각자 사는 곳으로부터 수 천km 떨어진 곳에, 그것도 일본의 외딴 섬에 모여서

대화를 하며 웃고 즐긴다는 것이 기적과도 같이 느껴졌다!

이런 일이 내게는 처음 있는 일이라 많이 방어적으로, 저자세로 임했던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이제서야 이런 경험을 하게되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좀 더 어렸을 적부터 이랬으면 좋았을걸,,

영어 회화를 좀 더 공부해야겠다.

돌아오는 배에서 본 오키나와

다음 날 오키나와 본 섬으로 돌아와 아메리칸 빌리지로 가려는 버스를 기다리는 도중

전 날 만났던 프랑스 친구들을 재회했다.

그제서야 물어본 이름.. 세미와 앙젤.

언젠가 파리에 가면 보자고 하면서 작별했다. 아쉽 ㅠㅠ

 

그렇게 시내버스로 40분가량 달려 도착하게 된 아메리칸 빌리지.

아마 고속도로였으면 금방 도착했겠지만 일반 도로였기 때문에 가다 멈추고 가다 멈추고..

중간에 시원하게 길이 뻥 뚫려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것은 하나 없고

작은 사이즈의 건물들이 끊김없이 길 옆에 위치해 있었다. 여기서 약간 오키나와의 규모를 실감했다.

그 유명한 후텐마 미군기지도 지나고 이름모를 캠프들도 지났다.

 

아메리칸빌리지 근처 숙소에 짐을 풀고 캐나다에 있었을 적 가봤던 A&W에 갔다.

생각보다 비쌌지만,,, 루트비어를 먹을 수 있기에 ㅎㅎ

10여 년 전, 진짜 맥주인줄 알고 무서워했던 루트비어

다 먹고나서 본격적으로 둘러봤다. 약간 테마파크 느낌??

에버랜드를 안 찾은지 꽤 오래되서 이런 분위기가 되게 반가웠다.

이런 하와이, 마이애미 감성 좋아요

아기자기하면서 무언가 모험하는 듯 아닌 듯 ㅎ

세기 말 유원지 느낌

가장 좋았던 부분은 바다를 따라 길이 조성되고(모래사장없이)

그 옆에는 식당가들이 위치해 운치를 더해줬다는 점이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가 떠오르기도 하고 매우 좋았다.

게다가 식당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그래서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설정샷 아님. 그래서인지 더 쓸쓸해 보이네.

수평선 너머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비록 친구들이랑 왔지만 옆에 연인이 있기를 희망하며

얼마전 잘 안되었던 여자를 떠올렸다.

그녀를 위해 헌신했던 시간이 떠오르며 씁쓸한 웃음이 스며나왔다.

약속이 있는 날이면 하루종일 그녀를 볼 생각에 아무것도 손에도 안잡히고 온갖 계획 등을 세웠었다.

그녀가 내 눈을 바라봐 주고 웃어줄 때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녀를 위해 이것저것 배려하고 물어보고 스스로 낮추길 반복했었다.

그녀와 함께 본 영화, 전시회, 먹은 음식, 칵테일...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와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었지.

그녀 앞에서 내 마음을 고백했을 때는 또 얼마나 떨렸는지..

진지하게 만나보기로 하고 다음에 만났을 때 건네준 꽃. 오고 간 얘기. 미래에 대한 낙관.

거기까지였다.

그녀는 날 좋아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산산조각난 아직 못다 핀 꿈과 상상들..

그 온갖 몽상들이 석양 앞에서 내 눈 앞에 흘러내렸다.

예전에 그녀를 상상하며 들었던 노래들을 들으니 그녀와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내 곁에 없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옆에 연인들이 지나가고 그 뒤에 가족이 지나간다.

나는 다음에 연인과 이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

과연 내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이런 침울한 기분에 빠져있지만 이내 내 곁에 있는 친구를 바라보며 많은 위안을 얻었다.

비록 겉으로는 차갑게 대하지만 곁에 있어주는 것 만큼 큰 위로는 없었기에.

 

 

그렇게 일몰을 지켜본 후 바로 옆 이태리 식당에서

마르게리따, 라자냐, 해산물 튀김을 먹었다.

해산물 튀김에 레몬즙을 뿌려먹는 것 만큼 맛있는 조합도 별로 없을 듯..ㅠㅠ

싸고 괜찮았던 이태리 리스또란떼

어느덧 여덟시 반. 

마저 둘러보니 미군을 컨셉으로 하는 상점이 있었다. 속된말로 군장점이라고 하면 편할듯..

군복 뿐 아니라 옛 미국 음악이 나오는 쥬크박스 등등 눈길이 안 가는데가 없었다.

정말 아메리칸 빌리지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또 하면서

그렇게 숙소에 돌아가 맥주를 마시며 마지막 날을 마무리 했다.

여기가 정녕 일본 땅?

지금 한국에 막 도착한 현 시점에서

내가 3박 4일동안 꿈을 꾸고 온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오래 지냈던 것도 있고

최근 실연의 아픔도 있을 뿐 아니라

서양 친구들과 대화를 나눠본지도 오랜만이었기에.

 

여러모로 평소와는 다른 시간을 보내 더 특별하게 다가온 것 같다.

앞으로 친구끼리 얼마나 여행을 더 다닐 수 있을까.

이제 졸업하면 취업해고 일에 치여 서로 시간내기도 어려워지고 

그렇게 점점 더 멀어져 버릴까 무섭다. 이것도 인생의 섭리겠지?

아무튼 지금 매우 현타가 와서 하루빨리 오키나와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만큼 나는 이번 여행이 맘에들고 행복했었다.

 

확실히 동양권에서 만나게 되는 서양친구들은

서양권에서 만나는 서양친구들이랑 다른 점이 있다.

(물론 개개인 차가 있겠지만)

뭔가 좀 더 열려있고 포용력이 크다고 할까나?

아무래도 홈그라운드가 아니다 보니까 나오는 특성이 아닐련지싶다.

그래서 뭔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고..

그냥 받은 느낌이 이렇다.

 

쉬고 온다는 컨셉을 200% 만족시킨 이번 여행이었다.

앞으로 영어 회화를 늘리는데 시간을 좀 써야겠다.

그래서 다음 여행 때는 게하에서 대화를 하며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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