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푹자고 일어났는데 고작 3시간이 흘러있었다.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어서 기분 좋게 좀 더 잠을 잤다.
이후 오전7시에 예약한 PCR 검사를 받으러 5시반 경 일어나 준비했다.
이때가 금요일이었으니, 막 출근중인 베를리너들과 함께 지하철을 탄 채 목적지로 향했다.
20분정도 미리 도착해서 서성한 출신답게 주변을 서성였다.
검사비는 45.99유로.. 여행을 하기위한 댓가.
한국에서 이골이 날정도로 받은 PCR이었기에 여기서도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신기한 것은 독일은 민간에서 코로나 검사를 주도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도 이비인후과 등에서 검사를 실시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부가 세운 선별진료소에서 무료로 테스트를 받는다.
하지만 여기는 몇몇 회사들이 각각 운영하는 민간 진료소에서 돈을 받고 검사를 진행한다.
그래서 베를린을 다니는 내내 다양한 PCR검사 브랜드(?)를 볼 수 있었다.
내심 양성이 나오길 바라며
유럽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회사에서의 후환이 무섭기도 하는 등 음성을 바라는 마음도 조금 있었다.
이후 일정은 데사우라는 지방 도시로 가야했기에
합반홉이 있는데까지 걸어갔다.
7시 반 경에 도착했는데 마침
낯에 익은 가게가 보였으니 이름하야 Pret à manger.
런던 갔을 때 주구장창 갔던 프레타망제였다.
반가운 마음에 냉큼 들어가
샌드위치, 초코쿠키,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먹었다.
그런데 런던보다 비싼 느낌.. 파운드가 유로보다 더 강해서 못느꼈나?
3파운드가 유럽에서는 4유로정도 하니..
그 순간 런던에 너무 가고싶어졌으나 다음을 기약하기로!
베를린 중앙역은 내가 가본 기차역 중에서 가장 놀라웠다.
영화 코코에서 죽은자의 세계에 처음 발들인 미구엘마냥...(진짜 적절한 비유라 생각)
각 층마다 기차역 플랫폼이 들어서 있고 이것을 실내에서 볼 수 있게 설계를 했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이런 시설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이용하는 독일인들이 부러웠다.
건축물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외관을 보고 감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 대도시가 보여주는 스카이라인에 만족하고 그 디테일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실내가 보여주는 위엄에 압도되었다.
기차는 정말 오랜만에 타보는 ICE
그리고 중간에 루터~~~역에서 RB라는 기차로 갈아타 데사우까지 가야했다.
2등석에 예약석이 아니어서
빈자리 아무데나 앉으면 됬는데 생각보다 찾는 것이 까다로웠다.
그렇게 두명 두명 마주보고 가운데 책상이 있는 좌석에
3인가족과 내가 같이 합류하게 되었다.
젊은 부부에 꼬마아이였는데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40분만에 경유지에 도착했고 이내 환승을 했다.
베를린을 벗어나니 드넓은 평원이 보이기도 하고
옛 동독이었던 지역이었는지라 꽤 낙후한 산업 시설과 인프라가 눈에 들어왔다.
통일한지 4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지역 간 불균형과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할 텐데
한국은 어떻게 될지?
그렇게 데사우라는 곳에 도착했다.
여길 온 이유는 이곳을 찾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바우하우스(Bauhaus)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옛날 대학교 1학년 시절, 여름방학을 맞아 나름 예술적 교양을 쌓아보겠다고
학교 도서관에 가서 그 유명한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를 냉큼 빌렸다.
당시 카투사를 준비하기 위해 토익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이를 희생해가며 책을 읽었다..!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인상주의, 현대 미술이 나오며 내 관심을 끌었고
무려 백 여년 전에 지어진 바우하우스 건물을 보며 큰 충격에 빠졌다.
지금봐도 어색하지 않을 디자인이 한 세기 전 부터 존재했다고?
(물론 이는 오늘 날의 디자인이 예전보다 나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오만함에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그 때 부터 은연중에 관심이 생겼다.
공교롭게도 2014년 당시 예술의전당 카페이름이 바우하우스였는데 지금은 테라로사로 바뀐지 오래.
이후 삶을 살아가며 접하는 다양한 이야기에 직간접적으로 바우하우스가 연결되어 있었다.
바우하우스 설립자인 발터 그로피우스와 바람을 핀 아내 알마의 마음을 되돌리려 작곡한
구스타프 말러의 8번 교향곡은 언제 들어도 벅차고 감동스럽다.
그 외 바우하우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수많은 건축가와 그들의 작품들 등
수도 없이 많은 스토리와 아이디어들의 요람이 바로 근처에 있다고 생각하니
기차역을 나서기 전부터 엄청난 기대감에 휩싸였다.
수 많은 예술 서적에 등장하는 바우하우스 본관의 모습은 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넓게 펼쳐진 예술학교와 실제로 재학 중인 학생들을 만나볼 수 있다.
목적지로 향하는 메인 도로에 들어서자 그 끝에 낯익은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로 양 편에는 실제 사용중인 학교 교실, 학생들의 작품들이 있었지만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대상을 향해 걸어갔고
좁혀지지 않을 것만 같던 거리는 이내 정문 앞에 다다르게 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늘 그렇듯
보수중이었다...
건물이 리모델링 할 때만 찾아오는 것도 재능인가??
그래도 내부에 들어가 한 세기 전의 디자인을 보며
충분히 감탄할 수 있었다.
또한 사람도 많이 없어서 마음 편하게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3층의 외딴 방에 들어가니 실제 교수(?) 사무실이라서
눈을 마주치자 뻘쭘해졌다.
교수는 그러려니 하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나보다.
이후 조금 떨어진 마이스터하우스로 갔다.
여기는 바우하우스 교수진들의 숙소로써(맞나?)
발터 그로피우스를 포함한 유명한 예술가들이 살다간 공간이다.(칸딘스키, 또 누구였지??)
그래서인지 현대미술관 전시장에 온 느낌마냥 세련됬고
지금과 비교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기차가 오후 두시 였는데
어느 덧 12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데사우에서 네 시간이면 충분히 다 둘러볼 줄 알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우선 역으로 가는 방향에
동네에 있는 숲?공원?이 있어 들어갔는데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고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주변에 가득했다.
그 자연의 소리를 조금이라도 간직해보려 영상으로 담았다.
이 때 좀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건지.
그동안 남들이 해왔던대로, 남들을 따라, 남들이 한것 만큼 만족시키지 못하면 괴로워했다.
그럴수록 스스로를 옥죄고 벌을 주며 좀더 완벽히 남들의 궤적을 살아내려 한다.
끊임없는 비교와 자기 비난, 그렇게 자연스레 자존감은 낮아져 간다.
내가 왜 이런 것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할까?
하지만 결국엔 내가 선택해 온 길이다. 누구에게 강요를 받은 적도 없고
이것이 가장 쉽고 단순하고 편한 선택지이기에
별다른 고민없이 살아왔을 뿐.
결국에는 무엇을 위한 것도 아닌
그저 숨이 붙어있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며 살 때,
어디에서 살 때,
누구와 살 때
행복할 지를 그 짧은 시간에 떠올려봤다.
우선 한국은 아닌것으로.
짧은 감상을 뒤로하고 공원에서 나오니
자연과 어우러진 동네 식당이 나왔다.
사람들은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올까?
독일인만 찾는 식당인지 메뉴도 전부 독일어.
다행히 종업원이 영어가 가능해서 추천해달라고 했다.
삶은 감자, 삶은 배를 곁들인 슈니첼?
의외로 먹을만했다.
무엇보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즐기는 점심의 여유가
바로 직전 숲에서의 기분 좋은 감정과 자연스레 이어져서 너무 행복했다.
그러고는 데사우에서의 추억을 뒤로하고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이때도 루터 무슨무슨 역에서 환승을 했어야 했는데
종로1,2,3,4,5가 마냥 루터~ 들어간 역이 3개정도 등장하길래
잘못내려버렸다!
그렇게 베를린행 ICE를 놓쳐버렸고
다음 기차까지 1시간 남짓 기다려야 했다.
시간이 남는 김에 역 근처 도시를 둘러보기로 했다.
지명은 Wittenberg?? 처음 들어보는, 근교 도시 중 하나였다.
그런데 성당을 지나 시내로 들어가니
유럽 소도시를 다니면서 느꼈던 그 감성이었다.
베를린은 전쟁으로 옛 건물들이 파괴되어
신축인 빌딩들이 많아 예전에 유럽에서 느낀 감성을 보기 힘들었는데
여기서 그런 느낌을 발견하니 너무 반갑기도 하고
다음 기차까지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당장 내일 떠나야 한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고.
대성당 내부에 들어가려 했으나 유료라서 다시 나왔다.
내가 있던 기차역 이름이
Lutherstadt Altstadt 였는데 여기서 한 정거장을 더 가서
Lutherstadt라는 역에서 ICE로 갈아타 베를린 중앙역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열차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ICE가 오지 않았다.
고속 철도이니까 시간 엄수가 잘 될거라 생각했고
(+일본이 정시 출발/도착률이 매우 높듯 독일도 비슷할 줄 알았다)
분명 맞는 플랫폼에 서있었으므로 와야했다.
그러나 주변엔 전부 독일어와 독일인..
문신있는 짧은 머리의 젊은 독일 청년에게 물어보니 이미 시간이 지나서 그런거라고??
분명 그 전부터 기다렸는데 기차가 오지 않은건데..?
그렇게 다음에 있을 베를린행 기차를 기다리며 기차역 밖으로 나가 주변을 구경했는데
이 환승역은 볼게 더 없는 곳이라 금새 돌아왔다.
그랬더니 전광판에 무슨 긴급이라는 뉘앙스의 표시가 떴고
20min~~ 이라 나오는 것을 보고 내가 타야할 기차가 지연됬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유럽은 여전히 딜레이가 잦다고 한다.
시대가 발전하여 버스가 몇분 후에 도착할지 알 수 있는 오늘 날,
이렇게 과거의 불편함을 마주할 때 어색하다. 그래도 며칠 지나면 적응하겠지.
예정보다 한시간 반 정도 늦게 베를린에 도착하여
친구는 먼저 박물관섬에 가 미술관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도 뒤늦게 따라가서 베를린 대성당 앞에 앉아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주변 미술관, 박물관 외부를 둘러보며 무료 와이파이를 쓰기도 했다.
페르가몬 박물관에 뮤지엄패스를 내고 들어가려 했으나 예약을 해야한다고 해서 다음날 오라고..
다음날 한국가는데요? ㅠ 포기하고 나왔다.
친구를 기다리느라 주변을 서성였는데
한국인 교환학생으로 보이는 6명 무리를 봐서 반가웠다.
서로의 차림새만 봐더라도 딱 알아볼 수 있기에
가뜩이나 동양인도 많이 안보였기에
서로 반가운 시선만 주고받고 거리를 두었다.
난 컨버스를 신고 있었는데 이거 신고 다니는 독일인, 외국인을 여기서 한 명도 보질 못했다.
친구를 만나 걸어서 체크포인트 찰리까지 갔다.
가는 도중에 오랜만에 바닐라 제로콜라도 마시고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훔볼트 대학(훔대) 도서관도 지났는데 고풍스러웠다.
그리고 남쪽으로 쭉 내려가는데 명동? 느낌처럼 고가의 매장들이 위치해 있었다.
또한 그 지역이 동독 지역이었으니 확실히 건물들이 관공서 느낌이 많이 나기도 했다.
어느 관광지나 그렇듯 이미 수많은 관광객들이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고있었다.
우리도 사진을 찍고 그 뒤로 전날 봐둔 바바리아(bavaria)라는 식당에 가기 위해 다시 티어가르텐 근처로 갔다.
여기도 동독 시절 부터 유지되었는지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고 이질적인 건물들에
대사관들이 위치해 있었다. 지금은 관광지로 유명해진 체코 역시 낡은 건물에 있었고
북한 대사관을 마주했을 때는 wow..
전 날 먹은 학센이 맛없어서 그런지
오늘 만큼은 맛있는 진짜 학센을 먹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또 시켜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맛은 똑같았고.. (맛x)
베를린에 족발 집을 차리면 대박나겠다는 의견을 친구와 주고받았다.
상호명은 베를린 원조 족발....
먹고나서 ADLON 호텔에 가서 칵테일을 마시려 했으나
투숙객이 아니라면 입장 조차 거부되는 곳이었다!
그날도 너무 피곤해서.. 일찍 게하로 들어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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