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저녁 공항에서 먹은 핫도그가 전부라
배고픔을 못견디고 일어났다.
수중에 먹을거라곤 1도 없어 주변에 마트를 검색했고
그렇게 아침 7시경 먹을걸 찾아 떠났다.
막연히 북극 날씨라며 엄청 긴장했는데
비록 기온은 낮았어도 바람은 불지않아 그럭저럭 괜찮았다.
이런 오지에도 이런 마트가 존재한다니 하며
스스로 놀라했었는데
후에 트롬쇠가 꽤 큰 관광도시인걸 알아차리고 뒤늦게 김이 빠졌다.
여기서 아침에 먹을 냉동 연어 4조각과(대략 만원정도로 굉장히 저렴)
Mr. lee 라면을 샀다.
스웨덴에서 먹은 생선요리가 엄청 비쌌던걸 감안하면
인건비가 상당한 듯 하다.
숙소에 도착하니 몇몇 인원들이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있었다.
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저 라면을 끓여먹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맛이 없어 결국 반 정도 남김..
그러고 난 뒤 연어 4조각 중 2개만 전자레인지로 해동한 뒤 프라이팬으로 해먹었다.
간을 맞출 만한 소금이나 후추는 없었지만 금새 친해진 독일인 아줌마가 버터를 주어
생각보다 맛있게 연어를 구울 수 있었다.
그리고 저렇게 음식을 하면서 빨리 요리를 배워야 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적어도 생존 요리만큼은..!
나름 거창하게 아침을 먹자 다들 약속이라도 한듯
너네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헤비하게 먹냐고 물어보길래
당연히 나니까 그런거라고 해명을 했다.
보니까 남녀할거 없이 간단히 요거트, 오트밀, 과일 등등 가볍게 먹던데
나 혼자 아침부터 난리 부르스를 친거 같다ㅎ
그러고 식사 중에 자연스레 얘기들이 오고간다.
호주 폴란드 프랑스 독일
세계각지에서 온 사람들끼리 일상얘기 부터
무거운 요즘 뉴스들까지 다양한 화제에 대해 토론하다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특히 요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의 침공으로 불거진 유럽 각 나라들과
EU와의 입장이 첨예하게 다르다는걸 느꼈다.
특히 전략적으로 군비를 증강시키는 폴란드 정부에 대한 유럽인들의 걱정어린 시선,
크라코프 인근 고속도로에서 우크라이나로 넘어가는 탱크들을 목격한 경험담 등
독일 아줌마에게 뮌헨 쪽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더니
뮌헨사람들이 posh하다고 했다.
나아가 본인의 친구들이 SAP, BASF(화학회사) 등 유수의 대기업에서 일하는데
엄청난 야근에 시달려 여가시간이 별로 없어서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무얼 위해 공부하러 오는지 잘 생각해보라고,
낭만적인 삶을 막연히 떠올려서 오면 쉽지 않을 거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다.
거의 두 시간이 흘러 얘기를 정리하고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왔다.
북위 69도에 위치한 트롬쇠는 1월 5일 기준
해가 뜨지 않고 저렇게 밝은 어스름만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도에 위치한 버거킹 치고는 번화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저 타이틀에 걸맞게 엄청 낙후되고 동떨어진 곳에 위치할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면 프랜차이즈의 퀄리티를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 수요가 필요할 것이다.
막연히 떠올려보는 66번 국도의 외로운 레스토랑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트롬쇠에 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한국에서 날씨 앱으로 트롬쇠 날씨를 매일매일 체크했었는데
그 때 마다 엄청난 구름과 폭설 예보로 뒤덮여 있었다. (영하의 날씨는 전혀 걱정될게 아님)
심지어 내가 이태리에 있을 때만해도 눈이 내린다고 해서 걱정이었는데
왠일인지 트롬쇠에 오기 하루 전 부터 구름들이 전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트롬쇠는 여행 내내 맑았고
대신 어마어마한 눈들을 통해 지난 날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날씨요정 등극)
여기서 글뤼바인을 파는데 안사먹었다.
돌아다니다 추워 카페에 들어가기로 했다.
높은 위도때문인지 24시간 내내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부두 근처를 걷다가 얼음덩어리가 있길래 바다를 향해 발로 찼다.
풍덩하는 소리와 함께 저렇게 둥둥 뜰 줄이야.
트롬쇠 전망대로 가는 케이블카가 다리 건너편에 위치해있어
관광객들은 보통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또 걸어서 다리를 건너기로 했다.
이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나가는 인류.
케이블카를 타러가는 길목에 왠 북극 고양이가 있었다.
알고보니 가정에서 키우던 애가 탈주한 거였고 주인이 와서 데려가버렸다.
여기 주민은 무슨일을 하며 살아갈까 생각을 좀 했다.
관광업, 어업?
케이블카 왕복 티켓을 샀는데 알아서 학생할인을 해주었다..!
생각보다 동양인이 많이 보였는데 대부분이 유럽에서 유학 중인 중국인들,
그리고 소수 일본인 가족이 있었고 한국인은 나 혼자여서 슬펐다..
중국어가 난무하는 케이블카를 버티기 위해
영국에서 온 모녀와 대화를 하며 올라갔다.
미국인들에게 어디서왔냐 물어보면 텍사스, 뉴욕 등 출신 주를 말하듯
영국사람들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게 신기했다.
UK나 Great Britain이라 말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다.
북극의 수도, 북극의 파리라는 별명이 붙는 트롬쇠.
인간거주구역 저 너머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얼마나 오랜 기간동안 인간의 손이 닫지 않았을지 궁금한 미지의 세계.
해는 뜨지 않지만 이렇게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고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고 진짜 상상이상으로 추웠다.
그래도 이곳 주변으로 난류가 흘러 동일 위도선 상에서는 따뜻한 곳이라고 한다.
전망대 뒤쪽으로는 저렇게 산 정상이 보였고
온 김에 올라보자는 생각으로 예정에 없던 등산을 시작했다.
가는 길에 펜실베니아에서 온 흑형들도 만나서 같이 으쌰으쌰 해봤지만
엄청 험난한 눈길에 비해 초라한 복장, 그리고 빠르게 어두워지는 주변으로 인해
도중에 포기하고 내려왔다.
내려올때는 그냥 내 자체가 썰매가 되어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아무도 밟지않은 길로 미끄러져 무섭기도 했지만 스릴이 넘쳐 재밌기까지 했다.
이래서 남자의 평균수명이 짧은 듯.
서로 재밌는 추억을 쌓고
전망대 내의 카페에서 오래 쉬었다.
스키장에서 스키타고나서 쉬는 듯한 분위기.. 따뜻하고 졸려~
여기서는 홍콩에서 온 친구를 만나 오래도록 얘기했다.
북극의 파리 목록도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Paris_of_the_North
그냥 파리가 최고인걸루..ㅎ
하프물범이 자기를 데려가달라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따..
6시에 오로라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장시간 추위에 노출되어 네시경 부터 실내에서 무한휴식.
세트 기준 2만원이 넘는 버거킹 메뉴를 골라
가게 내에서 쉬었다.
비쌌지만 수제버거보다 맛있었고 패티 육즙이 남달랐는데
진짜 충분히 값어치 한다고 생각하며 먹었다.(정신승리하는데 눈에서 땀이..)
오전에 봤던 '세계에서 가장 작은 Bar' 옆으로
모닥불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주변엔 관광객들이 쪼르르 앉아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 틈에 비집고 들어가 불을 쬣다.
거기서 또 베를린에서 온 4인 아줌마 집단과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작년에 베를린 가서 데사우의 바우하우스까지 둘러본 얘기..ㅋㅋ
그리고 외국인들 만날 때 마다 혹시 한국인 봤냐고 물어본 건 덤...
그 정도로 아시안은 죄다 중국인 뿐이었다.
혹시나 오로라 투어 구성원 중 한국인이 있을까하는 기대감!!.
역시나 나 홀로 한국인 ㅠ
20만원가량 한 투어였는데 비싸긴 엄청 비쌌다.
게다가 당일 날 오로라가 안나탄나 못보더라도 환불이 불가..!
계산해보니 투어만으로 돈을 엄청벌겠더라..
겨울 한정 시즌이라 해도 하루 7시간정도에 300만원이면 월 9천 매출이고
가이드 혼자 운전, 사진 등 전부 커버하니 그걸 고스란히! 엄청 남는 장사.
관측 기회가 한 번 뿐인 나로써는 운에 모든걸 맡겨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전 날 날씨가 맑았음에도 오로라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저잣거리에 퍼진 소문 마냥 하루 내내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혹여 오로라를 못보더라도 실망하지 말자고
투어 시작 전부터 스스로 위안삼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야외에서 캠프파이어하고 자연경관 바라보는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며 ㅋㅋㅋ
미니밴은 출석체크를 마치고 출발했다.
이상한 뉴에이지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오로라라는 거대한 대자연을 만나러 가기에 걸맞는 음악이었다.
30분정도 달렸을까 갑자기 가이드가 내리라고 했다.
그랬더니 하늘에 푸른 기운마냥 엷은 띠가 보였고
이내 저것이 오로라임을 직감했다.
육안으로 보면 희미하게 보이는데 사람 눈과 파장대가 다른 카메라로 보니 선명했다.
커튼마냥 넘실넘실 거릴 줄 알았는데
내가 본 오로라는 정적 그 자체.
다들 헤에~ 하고 있으니 가이드가 다음 스팟으로 넘어가자고 부추겼다.
차에 다시 탄 뒤 20여분 남짓 달렸을까, 어느 해안가 근처에 내려주었다.
가이드 말로는 주변에 물가가 있어야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다고 일러주었고
무엇보다 이곳 뷰가 너무 예쁘다했다.
처음에 이렇게 한 가닥의 오로라가 등장하더니
시간이 흐르자 나름대로의 형태를 갖춰갔다.
시간이 흐르자 구성원들 모두 이 신비로움에 익숙해졌고
더이상 굳이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게 되었다.
날씨가 너무너무 춥다보니 가이드가 캠프 파이어를 만들어주었고
그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얘기를 나왔다.
영국, 중국, 대부분이 미국, 그리고 나 한국 ㅎ...
중국인들은 자기들끼리만 얘기하고 그래서 나 혼자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휴스턴에서 온 미국 아재한테 혹시 항공우주산업 종사자냐고 물어봤는데
본인은 석유업종에 일하지만 어렸을 때 부터 언제나 우주에 관심이 있어왔다고 했다. 사는 데가 사는 데이니 만큼..
암튼 나의 엑손 모빌 투자이력을 밝혔더니 자기의 투자 실패기를 고백했고
이러다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유학생들이었는데
영어와 더불어 짧은 중국어를 하니 금새 친해졌다.
섬서성, 장사시 출신. 장가계 안다고 하니 신기해한다 ㅋㅋ
가이드분은 오로라 현상이 왜 생기는지 부터
투어 일을 하며 겪은 재밌는 일 등 다양한 얘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어제 오로라를 보러왔다가 수포로 돌아간 일행들 얘기를 해주며
오늘 너희들은 정말 운이 좋은거라고 치켜세워주었다.
어제 일행은 장장 대여섯시간을 야외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오로라만을 기다리며..
그래서 보통 오로라를 보기위해 못해도 이틀 이상은 투자한다고 한다.
내가 가이드에게 오늘이 유일한 기회였다고 얘기하니
정말 리스크가 컸다면서 럭키 가이라 했다.
단 한 번 주어진 기회로 오로라를 목격한 나에게
2023년은 되는 해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다짐하고 다짐..
2023년은 되는 해다!
자정이 되서야 돌아갔다.
차에서 Travis의 Closer가 나와서 반가웠는데
기분좋은 하루의 마무리로 정말 어울리고 차분했다.
트롬쇠 도서관에 내려 10분가량 숙소까지 걸어가는 중
진짜 피곤하고 추워서 혼났지만
방에 들어가자마자 뿌듯함과 함께 푹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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