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혼자여행 12 - 파리 (몽파르나스, 시테 섬, 생 루이 섬, 방돔, 팡테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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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항공들은 비용을 절약하기위해

보통 공항이용료가 저렴한 조조, 심야시간에 비행이 편성되는 것 같다.

 

나는 아침 일찍 출발하는 저가항공 transavia(에어프랑스 소속)을 타기로 되어있다.

그래서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에 일어나

주변에 잠든 인원들 몰래 숨죽여가며 준비를 마치고 

텅빈 카운터에 키를 놓아둔 채 게스트하우스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칠흑같이 어두운 꼭두 새벽, 역시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타지에 외지인 혼자 있다는 것이 꺼림칙하기도 했지만

이내 리피강을 건너고 스파이크 타워 주변에 있는 공항 셔틀을 타러 갔다.

첫 차 다음에 오는 차를 탄 것으로 기억..

 

정류소에 나 말고 한 명이 더 있었다. 

얼핏 보니 내 또래로 보이는 남루한 차림에 장발의 서양인이었다. (딱 머리기른 독일 다니엘 느낌)

주변의 깜깜한 분위기를 깨보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그 친구가 프랑스 사람인 것을,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파리 오를리로 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내 버스가 도착했고 현금이 없던 그 친구가 그냥 내리려 하자 내가 대신 내주었다. 1인당 6유로였을것이다..

공항에 도착하면 atm에서 뽑아서 주겠다고...

 

생각보다 더블린 시내랑 공항이 가까워 금방 도착했다.

둘 다 여행객이고 나 역시 별다른 짐이 없었기에

비행기 탑승 전 까지 3시간 가량 같이 있었다.

 

마침 아침을 안먹었으므로 공항 내에 있는 빵집에서 밥을 먹었다.

내 밥을 사주는 것으로 차비는 퉁쳐졌다.

내가 PAUL 빵집이 맛있지 않냐고 물어보니 정색하며 아니라고..ㅋㅋㅋ

정확히 industrialized(산업화)된 맛이라 한다.. 근데 솔직히 맛있긴한데..

그렇게 크라상과 커피를 두고 본격적으로 얘기를 했다.

 

우선 상대가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내가 프랑스에 대해 알고있는 것들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 당시 최근 일이었던 노란조끼 운동.

소르본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그 친구는 프랑스 노동자들이 일을 적게하면서 바라는 것이 많다고 했다.

한 달 여전 오키나와에서 만난 프랑스인(직장인)과는 전혀 반대의 입장이었다.

아마 대학교육을 받은 식자층과 노동자간의 입장차이를 볼 수 있는 대목이지 않을까.

이렇게 다른 시각을 현지인 입으로 직접 전해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이후 나폴레옹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는데(레 미제라블을 다 읽은지 얼마 안됬을떄라)

그 친구는 나폴레옹을 별로 안좋아한다고 했다. 유럽의 학살자라고..

나는 모든 프랑스인이라면 구국의 영웅이라 생각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진 않은가 보다.

내가 의외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자 내 의견을 물어봤다.

 

나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은 침략당한 역사만 있기때문에

한때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을 동경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한국인이 아닌 나 개인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런 식의 질문은 처음받았기에 순간 당황했고 이내 내 답변을 정정했다. 한국인들이 아닌 내 개인의 생각이라고..

그러고보니 나도 모르는 은연중에 내 생각을 한국인 전체를 대변하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는지에 대한 여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한국인들은 어릴적부터 타 문화권에 비해 애국에 대한 부분을 상당히 강조되어오며 성장한다.

반만년 역사에 단일민족이라는 phrase부터 시작해 애국가는 4절까지 필수이고 길거리에서 국기를 쉽게 보아온다.

학교에서는 국사를 배우며 조상님들이 수천년간 계속되어온 외세의 침략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구구절절 배운다.

그렇기에 오늘날 내가 누리는 모든 안녕과 평화들이 오래토록 한국인들이 흘려온 피땀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딴 한국선수가 태극기를 보며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뒤집어 놓았을 때,

삼성이 해외에서 엄청난 성과를 올릴 때 등등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단순히 국뽕이라고 치부하기엔 숭고한 어떤 감정을 느낄것이다.

실은 개인과는 전혀 무관한 일임에도 같은 정서와 역사를 공유한 동일한 한국인이기에, 감동과 성취감을 느낀다.

이런 느낌의 연장선상에서 나 역시 해외에 나가서도 한국인이라는 구성원을 대변하는 듯한 생각과 말을 자연스럽게 하고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을 공동체로 묶어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나름 내 자신을 객관화시켜 생각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이후 그 친구는 한국에 만연한 입시 지옥에 대해 물어봤다.

나는 소수의 인원만 그런 환경에 살고있고 나머지 학생들은 평범히 살아간다고 솔직히 말해주었다.

그러고나서 프랑스의 그랑제콜을 준비하는 학생과 비슷할 거라고 일러주었다.

 

중간에 탑승 게이트로 이동한 뒤

짧은 영어를 동원하며 소통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고

보딩타임이 지났는데도 탑승게이트가 한산했다.

큰일났다 싶어 전광판을 쳐다보니 게이트가 변경되어 있었고

그 친구와 나는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뭔가 영화의 한 장면.

거짓말 안보태고 그 비행기에서 마지막으로 탑승한 마지막 두 명이었다.

해의 고도를 보니 대략 7~8시 인 것 같다

주변의 눈총이 어느정도 느껴졌지만

모처럼 하루를 길게 늘어뜨려 시작한것 같아 뿌듯했다.

비록 그 친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더블린 전경

이륙하고나서 밖을 보니 더블린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전 날 죽을힘을 다해 걸어갔단 poolberg 등대와 리피 강변, 공장굴뚝 등등.. 

2박3일동안 바쁘게 돌아다녔던 모든 흔적이 미니어쳐같이 보이자 느낌이 묘했다.

마치 당시에는 긴박하고 죽을 것 같았지만 막상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인생처럼.

아니면 보이저2호가 태양계를 떠나기 전에 찍은 지구의 사진을 보고 칼 세이건이 남긴 서사와 맞닿아있는 감상일지도 모른다.

 

 

착륙하기 전 파리 시내가 보일까 기대했지만 전혀 다른 경로로 진입했기에 볼 수 없었다. 

한국엔 없는 각양각색의 들판과 평원을 보며 오를리에 도착.

그래도 착륙하는 과정에서 저 멀리 에펠탑이 빼꼼 보이는 것을 보고 벌써부터 흥분이 되었다.

 

이미 2년 전에도 와본 곳이었지만 그토록 새로웠다.

짐 찾는 곳에서 그 프랑스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나비고라는 프랑스 교통카드를 구매한 뒤 버스를 타고 몽파르나스 타워 근처에있는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이 곳은 6개월 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이 방문한 곳이다. 내가 네이버 인턴만 안했어도 다시 가는 것이었는데..)

 

5층짜리 건물이었는데 기적같이 5층에 배정되었고 놀랍게도 엘레베이터는 없었다.

그래도 주변에 까르푸와 지하철역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지..

방 구성원은 나이지리아에서 일을 구하러 온 친구와 러시아에서 역시 일을 구하러 온 친구였다. 

방은 나름 깨끗했는데 콘센트는 작동하지 않았고.. 괜히 보안에 신경쓰기 싫어서 귀중품을 전부 들고다니기로 했다.

(예전부터 외국인들이 작정하지 않고서는 날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했기에..)

 

아마 내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난 뒤 하는 의식 중 하나가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다.

몽파르나스까지는 15분정도 걸어야 했지만 나름 번화가이므로,

또 구글 맵스로 눈여겨 본 저렴한 코스 요리집이 그 주변에 있었으므로 몽파르나스 역으로 향했다.

조세핀 베이커 광장

미국흑인여성으로써 미국에선 차별받았지만 프랑스에서 추앙받은 조세핀 베이커. 2차대전당시엔 프랑스에서 중위로 활약했다고 한다.

죽어서는 마들렌 사원에서 장례를 치를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던 엔터테이너..

 

놀랍게도 내가 알아본 음식점은 그 날 문을 안열었고 아무데나 들어가기 좀 그래서 다시 호스텔 주변으로 돌아왔다.

너무 배가 고팠으므로 결국 호스텔 주변의 아무데나 들어가게 되었다. 몽파르나스 묘지 근처였던 것으로 기억.

주인 아주머니가 유창한 영어로 반겨주어서 매우 감동먹었다. 파리지앵들이 그러기 쉽지않은데.. 

알 수 없는 버거 세트

솔직히 프랑스 음식이 내 입에 잘 안맞아서 그냥 무난한 햄버거를 시켰다.

오리고기 햄버거로 기억하는데, 치즈의 발효된 맛이 강했지만 괜찮게 먹었다.

그리고 무슨 감자를 저렇게 많이 주는지... 

어찌저찌 다 먹었다.

 

확실히 배를 채우니 기운이 났고

본격적으로 파리 덕질을 하러 출발했다.

나비고도 있어서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도보여행을 지양하기로 했다.

 

가장 처음 향한곳은 시테(cité) 섬.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 위치한 곳이다.

2019년 초 사회대 행정실 근로알바 중에 뉴스를 보다가 노트르담 성당이 불에 타 첨탑이 무너졌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역 바깥으로 나오니 멀리서부터 출입을 제한하는 가림막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무슨 납 중독을 대비해서 근방 몇 m의 접근을 제한한다 하길래 겁을 먹었지만 결국엔 주변을 유유히 지나갔다.

확실히 노트르담 성당과 그 주변을 못가니 시테 섬에 있을 이유가 없어져

다리 건너 셰익스피어 서점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서점 내부에 볼거리가 딱히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센 강을 따라 걷기로 했다.

 

10년간 영업 종료

결국 걷다가 시테섬 동쪽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넜고

재즈버스킹을 좀 듣다가 바로 옆에 위치한 생 루이 섬으로 건너갔다.

 

옛날 부촌

예전 파리가 아주아주 작았을 때 모든 권력이 시테 섬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옆에 위치한 생 루이 섬은 고관들이 사는 주거단지가 되어 부촌이 되었다고..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네..

여기에 유명한 젤라또 집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내가 간 날은 문을 닫아서 못먹은 것 같다.

결국 까르푸 익스프레스에서 제로콜라 하나를 산 채 시테섬 북쪽으로 넘어갔다.

시테섬 북쪽에서 바라 본 파리 시청

그리고 다시 파리 남쪽으로 건너가 센강을 따라 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루브르

사진 기록을 보니 무슨 두서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다.

갑자기 방돔광장이 나오네.. 무튼 루브르 지나고나서 바로 파리 강북쪽으로 건너갔다 보다..

그 유명한 리츠호텔

파리에만 거의 네번째지만 예전에는 방돔광장을 지나칠 생각도 안했다.

촌스런 청동색 오벨리스크에 휑한 광장에 뭐 볼거리가 있겠나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파리에 대해 접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자연스레 이 광장에 대해 관심이 안 생길 수 가 없었다.

우선 이 곳에 위치한 리츠호텔은 수많은 소설에 등장하며 날 자극했다. 실제로도 유명한 작가들이 수시로 드나든 곳으로

헤밍웨이의 이름을 딴 칵테일바가 위치해 있고,

코코샤넬은 이 광장의 모양을 본 뜻 시계를 만들었고,

뭐 이런 일화나 비화는 제쳐두고 난 그저 서머싯몸 소설에 나온 이 호텔이 궁금했다.

하지만 호텔 명성만큼이나 비싼 차들이 호텔 앞에 자리잡으며 호텔 내부로 들어가려는 내 욕구를 억제했고

칵테일 바의 가격 역시 다음을 기약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외부에서 호텔을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작가들과 가까워진 기분을 느겼다.

 

마들렌(막달라) 사원

이후 걷다가 초록색 지붕의 마들렌 사원을 만났다.

딱히 성당 내부는 관심이 없기에 안들어갔다. 

 

에르메스 본점..?

 

국뽕

이후 남하하다보니 콩코드 광장이 나왔고 갤럭시가 딱 등장하자 감동을 받아버렸다.

 

 

샹젤리제 초입의 이정표

 

Grand Palais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차를 잡아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이 있다.

내가 재수 때 이 영화를 보며 얼마나 많은 힐링을 했는지 모른다..

 

성지순례하는 마음으로 위치를 찾았고

판테온 근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딱 이 느낌이었어

저 성당 문 앞 계단에 길 펜더가 앉아있다가 차가 와서는 태우고 슝 사라지는..

영화의 스토리는 잘 모르겠고

파리를 배경으로 예전에 유명했던 작가들을 만난다는 설정이 너무나 좋았다.

그래서 꿈에서 깨기 싫은 것 마냥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 같다.

좋은 재즈 수록곡은 덤..

 

아마 내 재즈세계의 시초는 우디앨런과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닐까?

 

 

아마 파리에서의 첫 날은

가고싶은 곳을 가려는 성급함, 예전의 추억 등이 한데모여 정신없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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