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혼자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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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1학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코딩 테스트나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야 했는데

정작 나는 열심히 책을 읽고 좀 더 젊을 때 할 수 있는 경험들에 집중했던 것 같다.

이제 대학에서도 결코 젊은 나이도 아니었고 집에서의 눈치도 봐야했기 때문에 편한 마음은 아니었음에도.

 

그치만 방학동안 친구들과 짧게 다녀왔던 오키나와에서

외국인들과 대화하며 놀았던(?) 경험은 매우 신선해서 좀더 그들을 이해하고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자연스레 개강이 한 달 남은 시점에서 유럽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에어차이나에서 당장 2주 뒤에 런던in - 파리out이 55마넌에 매우 싸게 나왔기에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이런 자세로 좀 공부하지...)

 

여행 경로는 인천 -> 북경(17시간) -> 런던 -> 에딘버러 -> 더블린 -> 빻히.

거의 2주에 달하는 스케줄이었다.

저멀리 유럽에 혼자 가는 건 처음이었지만 솔직히 혼자 이곳저곳 여행 다녀봤고 또 나이도 먹은 만큼 먹은지라 아무렇지도 않았다. (당연한건가?)

 

물론 아빠의 반대가 매우 심했지만 장문의 편지로 겨우겨우 설득했고,

어찌보면 내 20대 마지막이 될수도 있는 열정(?)여행을 위해 최소한의 물건만을 준비했다.

북경에서의 긴 경유시간이 가장 큰 난관이었지만 대학교 1학년 시절에 뉴욕갔을 때도 잘 해냈었고, 군대에서도 산전수전 다 겪었으니 별거 아니겠지 하며 가볍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옆으로 매는 운동용 백(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에 2주간의 짐을 다 때려넣었다.

 

사실 수하물 관련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바로 에딘버러->더블린->파리를 이동할 때 저가 항공사 티켓을 끊었고

얘네들 수하물 제한이 10kg이라 많이 엄격하다는 것이었다.

짐 싸는데엔 이미 이골이 난 지경임에도 2주 여행, 그것도 유럽으로 가는 것이니 본의 아니게 두뇌 풀가동을  하여 필요한 것들만 챙겼다.

그렇게 수많은 예측과 계산끝에 공항에서 오피셜한 전자저울로 재보니 6.5kg(하...).

이게 바로 대입에서 눈치싸움 실패한 느낌??

 

공교롭게도 내가 떠나는 당일 날 유럽에서 돌아오시는 부모님을 인천공항에서 만나고 어느 정도의 유로를 건네 받은 다음

암울하게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나는 당장 런던을 가고싶은데.... 뭐, 싼거를 선택한 tradeoff에 대해 책임을 져야겠지?

 

경유편을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지금 함께타고 있는 승객들의 최종 목적지가 다 제각각이라는 점이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모두 다같이 베이징에 가고 있지만 누구는 파리, 누구는 런던, 아니면 외딴 중앙아시아, 아님 북경에 어학연수를 하러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냥 이런 사소한 것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다행히 장시간 경유를 하는 승객에 한해 에어차이나 측에서 무료 숙박을 제공했고

이코노미 승객인 나는 당당히 하급 숙소에 배정받았다.

1등석이나 비즈니스 등급이면 무려 호텔에 잘 수 있다고!! 

근데 생각해보니 그런 등급 탈 돈이면 직항으로 가겠다.. ㄹㅇ 에어차이나 왜 타,,

 

그렇게 해서 북경에 저녁 8시 경에 도착한 뒤

배정된 숙소로 가는 차량(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원셔틀)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주변은 깜깜하고 고속도로 바로 옆에 위치한, 그냥 말 그대로 숙박업소였다.

여관이라고 해야되나?? 그런데는 통 안가봐서 잘모르겠따,,

 

침대랑 에어컨은 문제 없었지만 혹시나 해서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보니 석회질의 하얀 가루 같은게 정말 많았다ㅎㅎ.

수돗가에도, 샤워부스에도 모두~~ 

그렇다고 안씻을 수도 없고 그냥 하루정도만 나는 중국인이다 생각하고 씻었다.

(사실 중국에서 3개월 체류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없었다.)

00국제주점 건물 뒤에 위치한 별볼일 없는 숙박업소

 

헬스백은 수하물로 부친 상태였기 때문에 당장 풀 짐도 없었다.

방 문이 닫히고 적막이 흐르자 이내 나홀로 덩그러니 남겨진게 실감났고 이런 기분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꼈다.

한국에는 그래도 주변에서 한국말을 쓰니 소속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구글, 페북, 인스타는 차단되고 와이파이도 되지 않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도의 이 외딴 방에 와있으니

내가 정말로 유럽에 가는게 맞는건가 싶기도 하고,

고1 때 이런곳에서 어떻게 3개월간 지냈나 싶기도 했다. 

 

티비를 틀어보니 해외 호텔마다 있는 KBS WORLD나 CNN, BBC 이런 건 전혀 없고

차라리 CCTV 영어 방송이 있으면 좋으련만 죄다 중국어 방송밖에 없었다.

그나마 중국 애들이 해외가서 탐방하는 예능과 한국 드라마라 해도 믿을만한 중드 좀 보다가 꺼버리고 주변 산책을 갔다.

 

이미 밤 10시를 넘었고 치안이 매우 걱정되었지만 그냥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에스더 마인드로 밖을 나섰다.

구글지도가 안되었기에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대충 공항이랑 북경 시내 사이에 위치한

그렇고 그런 위성도시 중 하나인 것 같다.

좀 걷다보니 괜찮은 에어텔도 있어 투숙객 마냥 들어갔는데 JAL승무원들도 보이고 한국인 관광객들도 보여서 매우 부러웠다.

그리고 바로 근처엔 에어차이나 본사가 무슨 성채마냥 들어서 있는데 정말 사이즈가 어마어마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쯤 걸었나, 배가 고파서 24시간 하는 바에 들어가 햄버거를 먹고 돌아갔다.

 

여기가 싱가포르였으면 하는 생각에 타이거 맥주를 마셧당

어차피 새벽 5시에 다시 공항가는 버스를 타야되고 미리 시차적응좀 할겸 잠을 안자고 다시 티비를 켰다. 그리고 줄곧 광고만 봤다.

 

해외를 가게 되어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이나 광고를 보게되면 하나같이 그 나라만의 특징이 보인다.

특히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 이 두 나라의 차이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중국 방송은 특유의 성조때문에 과장스럽거나 강조되어 있어,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중국인 관광객 이미지와 직결된다.

한편 일본은 그 특유의 오래된 UI 때문에 촌스럽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 방송마다 한칸을 차지하고 있는 날씨그림 이라던지.. 큼지막하게 적힌 히라가나 가타카나..

절대 한국것이 최고라는 말이 아니라,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특징이 이런 식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해외에서 들여온 외국 제품에 한글보다 가타카나가 적혀있어야 뭔가 신뢰감이 들기도 한다. 예를들어 클래식 음반.

 

무튼 50분 정도 짧게 자고 일어나 석회수로 씻고 공항으로 향하는 비좁은 셔틀에 몸을 실었다.

(해외에서 그렇게 잘보이던 한국인을 여기선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로비는 화려했지만.

에어차이나 숙소제공 후기는,

나름 항공사측의 배려로 무료 숙박을 할 수 있었지만

우선 무비자 상태로 공항 내 세관을 헤메는 것도 일이었고 절차도 나름 있어서 상당히 피곤하다..

또한 왔다갔다 셔틀도 타고.. 다시 입국카운터에서 심사받아야 하고..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다.

+중국은 공산국가라 그렇게 생글생글한 분위기가 아니다 ㅠㅠ..

이런 진 빠지는 일도 혼자이고 젊어서 했지.. 나중에 나이들어서 와이프랑 여행가면 절대, 절대 안하는걸로.. 무조건 싸울 듯..

중국 경유도 이번을 포함해 벌써 세 번째(뉴욕, 싱가포르, 이번)인데, 내 인생에서 마지막 중국항공 && 마지막 경유이길 바라고 또 바랄 뿐 ㅎㅎ (그러면서 또 탈듯)

 

C팜 D팜 E팜

또 북경 수도 공항이 엄청나게 커서 이동하는데 체력 소모가 크다! 물론 할거 없어서 한바퀴 돌아다녔음. 그냥 빨리 비행기타서 런던과 가까워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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