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드로에서 짐을 찾고 런던으로 갈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지하철, 버스, 택시 등등..
우선 택시는 선택지에 없었다. 내 열정여행과 거리감 있는 금액을 요구했기에..
버스 역시 번거로울 것 같아 포기.
고속열차는 비쌌고 결국 답정너인 일반열차를 타기로 했다.
도쿄에서도 나리타에 갈 때 일반열차를 타면 한시간 반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래서 여유있는 분들이 타는 고속열차를 바라보며 부러움 가득 찬 시선을 보냈다.
그런데 영국에서도 어김없이 같은 선택을 하네? 언제쯤 가성비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여행 준비를 하며 블로그 포스트를 보는데
일반열차는 시간이 타 운행수단에 비해 오래걸리며 승차감도 매우 좋지 않아 가급적이면 피하라고 했다.
살짝 걱정이 됬지만 두돈반 후탑보다는 편하지 않겠냐며 무시하기로 했다.
야심차게 티켓 판매기에 지폐를 넣었더니 불안하게 계속 안먹는다.
물론 50파운드 짜리 고액권이기도 했지만 분명 기계에서 받을 수 있는 화폐여서 계속 시도했는데 결과는 똑같았다.
결국 인포메이션 직원에 물어보니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 구권이라고.
신권으로 환전을 해야했으나 도착한 날이 일요일이라 은행도 문을 닫은 상태.
직원말로는 런던 영란은행에 직접가서 바꾸랜다.. 뉴스나 경제관련 서적에서 보던 Bank of England!
결국 비자카드를 이용해서 비싼 수수료를 물고 오이스터 카드를 샀다.
세계 어느 지하철이 그렇듯이 영국도 역시 한국에 비해 폭, 너비가 좁아 좌석에 사람이 전부 앉아있으면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도 기대 이상으로 쾌적해서 바깥 구경을 하니 어느 새 지하로 들어가버렸고 이내 환승역에 도착했다.
짐이 헬스백 한 개라 다행이었지 거대한 캐리어가 있었다면 이동하는데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좁은 지하철에서 가뜩이나 사람도 많은데 캐리어를 붙잡고 서있기란 쉽지많은 않다.
또한 낯선 환경에서 한 손엔 구글맵스를, 한 손에는 짐을 질질 끌며 다니게 되면 그야말로 신경이 곤두서버려 매우 예민해지는데,
이는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니다.
옆으로 매는 가방을 가져간 것을 연신 다행이라고 느끼며 oxford circus역에 내렸다.
내린 장소가 그야말로 명동같은 느낌이었는데, 거대한 의류매장에 수많은 행인에 복잡했다.
또한 이 때가 처음으로 영국의 날씨를 느낀 곳인데 한 여름이었던 한국과는 달리, 낯이었음에도 선선했다.
대충 GAP매장의 와이파이를 이용하여 숙소 위치를 파악하고 심카드를 산 뒤 게하로 15분정도 걸어가 짐을 풀었다.
숙소 바로 옆에 pret a manger가 있어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었다.
영국의 살인적인 물가로 인해 대중교통은 전혀 대중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런던판 따릉이인 산탄데르(Santander) 자전거를 이용해야 했는데 무려 24시간에 2파운드였다.
파리와 마찬가지로 서울에 비해 매우 작은 런던이었기에
관광명소간 이동할 때 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터무니없이 비쌌고
결국 런던 일정 내내 공용 자전거에만 의존하며 다니게 되었다.
사실 자전거에 자신이 있기도 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친구와 함께 서울에서부터 속초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 적이 있다.
평소에 타버릇 하지 않아 첫 날 부터 근육통이 장난이 아니었지만 젊은 날의 패기로 미시령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전역 후, 서울에서 한 학기정도 집에서 한양대까지 왕복 24km정도 거리를 따릉이만을 이용해서 통학했었다.
그 중 편도 최단시간 기록이 36분이었는데 이런 경험들이 모여 자연스레 런던에서의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선택했다. (대충 돈 아끼고 싶다는 말)
그렇게 홀가분하게 에코백과 우산만을 챙긴 채 자전거에 몸을 싣고 출발했다.
드디어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여행하는 기분.
다만 영국은 좌측통행인데다가 자전거는 vehicle로 간주되었기에 자동차와 함께 차도로 다녀야 했다.
인도로 다니는 순간 사람들의 무서운 눈초리를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찻길로 가려니, 런던의 명물 2층버스가 코끼리가 쫒아오는 것 처럼 느껴진다.
버스 몸집만큼이나 경적소리도 커서 여러번 놀랐다.
처음엔 좌측통행이 적응안되서 많은 차량들로 부터 빵빵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또한 장롱면허라 도로 규칙엔 무지했기에 애를 좀 먹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
몇번 타보니 금새 적응되어 오히려 따릉이보다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자전거 자체 성능도 우수했지만 무엇보다 런더너들의 시민의식이랄까,
자전거에 대한 자동차의 양보가 매우 자연스러웠다.
따라서 갓길로 적당히 다녀주면 큰 문제가 없었고 또한 많은 시민들이 자전거를 이용했기에 그들과 함께 달리면 되었다.
그렇게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은 채 의식의 흐름대로 통행량이 많은 곳을 따라 다녔다.
저녁에 로얄 앨버트홀에서 열리는 Proms 공연을 예매했기에 그때까지 시간을 때울 요량이었기에 어딜 가든 상관없었다.
우선 런던하면 떠오르는 빅벤이 생각나서 거기로 향했다.
그런데 기대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이런 구조물이 되어있었다.
여행지에서 리모델링 중인 관광명소를 보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그러려니 감안할 수 있지만 한 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건축물이 보수 대상이면 얘기가 다르다.
안그래도 여행 가기 두달 전에 노트르담 드 파리가 불에 타버려서 입장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충격이 더 컸다.
진작에 알아보고 올걸...
그러고 보니 싱가포르 갔을 때도 멀라이언이 보수 중이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참 안 좋아..
허탈했지만 이내 받아들이고 빅벤 근처에서 자전거를 반납했다. 그리고 트라팔가르 광장을 넘어 피카디리 써커스로 걸어갔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즐비한 수많은 광고판 중 삼성, 현대, LG 등 국내 기업의 것을 보면 알수없는 애국심이 솟아오른다.
마찬가지로 런던에서도 그랬다. Piccadilly Circus 역 근처에도 브로드웨이 비슷하게 광고판이 있는데
삼성, 현대가 버젓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까지 저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미 애플 하나만으로도 시가총액이 국내 코스피 전체 가치보다 높고
테슬라의 놀라운 성장은 기존 자동차 산업구조를 대체하려는 중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오랜 제조업 기반의 국가는 어떻게 될까?
아무리 삼성이 휴대폰, 반도체 점유율이 높다하더라도 제조업이라는 특성 상 더이상의 폭발적인 성장은 힘들어 보인다.
네이버, 카카오로 대표되는 한국 IT도 현재 언택트 특수로 주가가 올랐지만 전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을까?
과연 국내 기업에게 FAANG, MAGA 등으로 대표되는, 현재 세계의 트렌드를 리드하고 있는 회사들을 이길만 한 무언가가 있을까?
반 세기 후 한국은 어떻게 되있을까? 난 어떠한 선택을 해야되는가.
이러한 한국의 현실을 외면하고 해외를 택하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인가. 등등의 쓸데없으면서도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생각들.
그렇게 런던의 모습에 신기해 하며 마음가는대로 걸어다녔다.
사실 옛날에 영국에 간 적이 있다. 때는 2000년 7살 무렵.
단지 기억나는 것이라곤 드넓은 공원에서 머리위로 수많은 새 떼(비둘기보다 큰, 거위였던 것 같음)가 날아가자 파랗게 겁에 질렸던 것 뿐. 또 호텔에서 포도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전부... 이래서 어릴 때 좋은 곳 데리고 다닐 필요가 없다.
분명 앨범사진을 보면 버킹엄 궁도 가고 케임브리지도 가고 갈 데는 다 간 것 같은데.
그래도 인생을 살아가며 책, 영화, 공부를 하며 접할 수 있던 런던의 모습은 늘 궁금했었고 내 나름대로 상상을 펼칠 수 있었다.
수 많은 영화의 배경지이자 찰스디킨스, 서머싯 몸 등의 소설 속에 담긴 런던.
핑크플로이드, 비틀즈, 롤링스톤즈, 퀸, 에릭 클랩튼, 오아시스, 스웨이드, 블러, 악틱몽키즈 까지의 브릿팝 밴드, 어떻게 보면 미국 이상으로 음악에 영향을 끼친 작은 나라의 수도.
월스트리트 버금가는 돈이 흘러가는 런던.
세계의 1/3, 몽골 제국보다 더 많은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의 수도 등등...
그리고 지금 이렇게 걸어다니면서 런던에 대해 스스로 정의했던 수식어를 검증할 수 있었다.
저기는 영화 촬영지이고 저기는 카이사르 이후 로마시대의 건축물, 저기는 핑크플로이드 앨범커버에 사용된 공장이고 저기는 유명인사가 자주 들르던 카페, 저기는 내로라하는 금융, 사모펀드, 헤지펀드 들이 모여있는 곳, 저기는 영화에서 누가 ~~ 했던 곳...
이렇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대단함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
유럽에 6번정도 갔었던 나였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목도했고
대영 제국 시절의 유산이 런던 곳곳에 남아 지금까지 빛나고 있음을,
유럽연합을 탈퇴하려는 이유가 있음이 감감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걷다걷다 저녁 시간이 다되어 클래식 공연이 열리는 로열 앨버트 홀로 걸어갔다.
공연장은 하이드 파크 옆에 위치해 있었는데, 나름 숲세권이라 그런지 공원 옆으로 고급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었다.
정말 서울에서도 보기힘든 고급 차량하며 아파트 로비 클라스 하며...
신기한건 운전 조수석에 중동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는 점. 나도 석유부자 될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쉬지않고 걸어다녔더니 좀 피곤했다.
그런데 유튜브 영상에서만 보던 프롬스 공연장이 눈앞에 펼쳐지자 정말 신기하면서도 내가 와있는게 진짠가 싶었다.
수많은 프롬스 영상을 보며 훗날 저기엔 꼭 가봐야지라고 다짐을 했었는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덜컥 너무 일찍 와버린 느낌? 실감이 안났다.
사실 여행을 계획할 당시에도 프롬스는 고려하지도 않았는데
무심코 기억이 떠올라서 찾아보니 마침 프롬스 기간이랑 겹쳤다.
뭐 두 달 넘게하는 클래식 축제이니 여름 성수기에 안 겹치게 계획하기도 힘들겠지.
그런데 아쉽게도 내가 런던에 체류하는 기간동안엔 썩 맘에 드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가장 싼 자리에 예약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무려 사이먼 래틀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 듣는 현대음악임에도 십만원 가까운 거금을 들여 예약을 해버렸다.
그렇게 한국에서 예약했던 최하등급의 자리에 앉아 공연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예약할 때 프로그램 편성을 대충봐서 쇼스타코비치 피협 1번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교향곡 1번 이었다.
그렇게 예상과는 다른 음악이 나오니 1악장 까지 집중하다가 이내 놓쳐버렸고, 시차 때문에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공연은 끝나있었고 밤 10시가 가까웠다.
빨리 돌아가서 쉬려했으나 공연이 끝나기 무섭게 인근 공용 자전거들이 동이 나버렸다. 역시 나라를 불문하고 이런 거는 다 똑같다.
가용 가능한 가장 가까운 자전거 보관소가 하이드파크 중간에 위치해 있어 쌀쌀한 밤공기를 맞으며 걸어갔다.
여름인데도 런던은 춥다.. 한적한 공원을 혼자 걸어가려니 무섭기도 했지만
공연이 끝나고 걸어서 귀가하는 커플들의 모습을 보니 걱정은 커녕 화나기만 했다.
그래도 훌리건이나 무서운 인종차별주의자 안만난게 어디.
우여곡절끝에 자전거를 발견하고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밤이되면 자전거 대여가 되는 곳이 있고 안되는 곳이 있다.)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몸을 이끌고 게스트하우스까지 타고 갔다.
딱 새벽 3시경 불침번 근무 들어간 기분.
심지어 복귀 경로도 처음 가보는 길이었기에 신경을 써야 해서 더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고 침대에 쓰러지니 시차적응 필요없이 바로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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