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아시아 동쪽에서 유럽 서쪽까지 가는 장거리 비행이었는데 생각보다 소형기종이었다.
해외에 갈 때 내심 중국항공 경유를 자주 했기에 은연중에 한국인을 찾아내는 버릇이 생겼다.
가장 편한 방법으로는 외양이 되겠다. 헤어스타일, 패션 정도면 충분.
나이드신 중년 분들이야 차이가 명확한데 젊은 층일 수록 점점 분간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럴 땐 비행기 타기 전 사람들이 들고있는 여권 색깔로 알 수 있다.
중국, 일본은 빨간색. 한국, 대만은 초록색.
그래서 이역만리 타지에서 젊은 분이 한국인 같고 초록 여권을 들고 있으면 괜시리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목적지가 런던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조식이라 그런건지 정말 중국스러운 English Breakfast가 나왔다.
분명 비행기 티켓 가격이 55만원대였음에도 비행기가 전체 수용인원의 2/3도 못채운 느낌이랄까...
좌석에 앉은 채 올려다보면 사람 듬성듬성 비어있는게 눈에 보였다.
아무렴어때, 내 옆자리도 비어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이코노미 특성상 앞 뒤 간격이 좁아 두 자리를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효율이 떨어져 결국 똑같이 불편햇다 ㅠㅠ
뭐 눕지도 못하고 편하게 다리를 뻗지도 못하고
확실히 나이가 드니 이전보다 힘들고 그만큼 뒤척였던 것 같다.
지나는 도중 지도를 보니 상트페테르부르크 옆을 지나는 중.
어렸을 때 저기에서 헬싱키 가는 열차를 탔었더랬지...
내 인생작 죄와벌에 나온 라스꼴리니코프가 거닐었던 거리를 따라 걸어보고 싶다.
영국 본토에 이르기 전 해안에서 매우 많은 풍력발전소들을 볼 수 있어서 매우 신기했다.
다른 유럽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옛 것이 잘 보존되있는 관광명소만 돌아다니다가
이런 산업 구조물을 마주했을 때 주는 이질감은 매우 신선하다.
런던 도착하기 앞서 보이는 농지들.. 아마 수 세기동안 비슷한 모습을 유지했었고 앞으로 그러지 않을까?
내심 창가 자리에 앉아서 히드로에 착륙하기 전에 런던 상공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난 비행기 조종사가 아니었으므로 비행경로는 당연히 몰랐고 내심 운이 좋길 바라고 있었다.
점점 건물들의 밀도가 높아지고 고도가 낮아지며 곧 도착하겠거니 싶었다. 근데 아직 런던 모습은 코빼기도 안보이는 상황.
혹시 공항 위치가 런던과 무관한 곳에 위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구글맵스를 통해 수없이 비행경로를 예상해봤기에 틀림없이 보여야만 했다. (분명 다른 블로그 후기 글에서도 봤는데..)
기대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자 반대편 창가쪽에서 보이겠거니 생각하고 체념을 한 순간!
정말 나는 원래 사진 잘 안찍는데 미친듯이 연신 사진을 찍었더랬다.
군데군데 있는 구름과 함께 구체적으로 보이는 런던 랜드마크들을 보며 홀려버렸다.
솔직히 장거리 비행 동안 창밖의 풍경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비행 시간의 절반은 밤이고 낮이라 하더라도 구름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아 밖을 내다보는 의미가 없다.
유럽갈 때는 그 광활한 러시아로 인해 간혹 보이는 불빛이 전부, 미국에 갈 때는 드넓은 태평양 아니면 구름이 전부..
따라서 이착륙시 허용된 짧은 시간 만이 창가에 앉은 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해 주지만
공항의 위치 문제로(ex 나리타) 훌륭한 광경을 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내 짧은 인생동안 몇몇 대단한 뷰가 허용됬으니,
1. 캐나다로 가는 밤비행기 중 지나간 서울 야경
2. 하네다 공항에 내리기 전에 보이는 도쿄 전경
3. 오를리 공항 활주로에 착륙하기 직전에 유일하게 식별가능한 에펠탑
이 정도가 전부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생한 런던을, 도시의 역동을 전부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런던 전체를 훑으며 히드로에 착륙했고 드디어 중국의 색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사히 착륙을 마치고 비행기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동안 드넓은 히드로 공항의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충격을 받았다.
바로 눈에 보이는 수많은 항공기들의 국적.
United, American Airlines, Air Canada, Qantas, 에어뉴질랜드, 싱가폴 에어라인, 케세이 퍼시픽이 한번에 시야에 들어오자 단숨에 영국의 위대함을 느꼈다.
예전에 식민지로 거느렸던 나라들의 국적기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것을 보니
영국의 그 위대했던 과거의 영광이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듯한..
비록 지금은 많이 쇠퇴했지만 여전히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미국 항공기가 매우 많았는데 저게 모두 여행객을 위한 비행편은 아닐테고,
얼마나 많은 비즈니스가 양국 사이에서 오가는 지를 알 수 있었다.
심지어 한-중, 한-일 모두 저정도는 아닌데 그 정도로 영국과 미국이 긴밀한 관계에 있다.
그만큼 영국은 매우 중요한 나라이고 이후 여행을 하며 여타 유럽 국가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브렉시트를 감행한 것이 오만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다는 것을.
히드로의 출국 심사가 악명높다 들어서 나름 긴장을 했지만 웬걸,
두어달 전부터 특정 국가에 한해 자동출입국 심사가 이루어졌다.
나와 같이 온 중국인 승객들의 긴 줄을 뒤로하고 값싼 애국심을 느끼며 재빨리 짐을 찾았다.
그래도 아시아에서는 한,일,싱 밖에 호사를 누리지 못하는 걸 보고 매우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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