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도 11시 까지 빈둥거리다가 밖으로 나왔다.
홍콩도 핵심 여행지만 다 돌고나면 볼게 크게없다.(그건 어디나 마찬가지..)
그래서 보통 한국에서는 쇼핑을 하러 많이 간다고 들은 것 같다..
전 날도 딤섬을 먹었지만 이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합리적인 가격에 먹겠냐며
학까웃으로 또 딤섬을 먹으러 갔다.
이른 시간에도 어김없이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지만 운좋게 나는 텅 비어있는 2인석에 혼자 앉을 수 있었다.
혼자 신나서 주문까지 마치고 음식을 기다리던 와중에 아니나 다를까
새로 온 여자손님이 합류하게 되었고 어색한 정적만이 흘렀다.
그런데 얼핏 봐서는 생김새가 한국인 같았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영어를 쓰는 발음조차 한국식이었다.
순간 내 입에서 한국분이세요? 라는 말이 나왔고 그 분 께서는 당황했던 모습이 역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네.. 라고 하셨다.
어떤게 맛있냐고 물어보길래 딤섬 경험자로써 내가 메뉴 몇 개를 추천해 주었다. 그리고 둘이서 음식이 나올 때 까지 쭉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기억하기로는 우선 나 먼저 내 소개를 했다.
올해 21살이고 현재 대학 들어가기에 앞서 혼자 홍콩으로 여행왔다고.
그 분은 우선 내 어린 나이와 혼자 온 것에 대해 놀랬고 어느 대학에 갈 것인지 전부 궁금해 했다.
아직 잘 모를때라 솔직하게 다 말한 것 같다. 한양대에 간다고 하니 그제야 그분께서 나에대한 파악이 어느정도 끝나 여유가 생겼는지
이후 자기가 몇 살인지 맟혀보랜다.
나는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25살 밑이라 했고 그분께선 계속 나이를 올리라고(up) 하다가 결국 자신도 지쳤는지
자신은 서른 살(!)에 초등학교 교사이고 방학을 맞아 홍콩에 왔다고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전남친들(5명 중 무려 3명)이 한양대라서 매우 반갑다는 말도 해주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9살 차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어쩌면 그분이 가르치는 초등학생이 나와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
지금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얼마나 어려보였을까? 내가 20대 초반 친구들을 봐도 한참 어려보이는데.
아직 소개팅은 고사하고 미팅도 해보지 않은 때라 이런 만남이 매우 낮설면서도 흥미로웠다.
그렇게 뭘 먹은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긴장하기도 했고 한국이 아닌 타지였기에 정신을 바짝 차렸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좋은 분이셨고 밥을 다먹고 나서 침사추이 바닷가로 산책을 나가 내게 허유산 망고드링크를 사주셨다.
또 그 자리에서 난생 처음으로 낯선이와 카톡 아이디를 주고받았고 저녁에 할 거 없으면 만나자는 제안까지 받았다!
솔직히 많이 무섭기도 했는데 이렇게 인생을 배워가는거지 않겠냐며 스스로 긴장한 마음을 달랬고 저녁 약속시간을 정한 뒤 각자 갈 길을 갔다.
다시 혼자가 된 나는 홍콩에서 쇼핑할 것도 아니고 이미 가볼 곳은 전부 둘러봤기에
가이드 책자에서도 간략히(대충) 설명하는 리펄스 베이를 가보기로 했다. (얼마나 갈 데가 없었으면.. 차라리 홍콩대나 가볼걸!)
약간 아 그렇구나~ 하는 식으로 봤던 것 같다. 여기도 약간 홍콩 사람들의 휴양지 느낌인데,
음.. 부동산 가격이 비쌀것 같다.
이내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그 분을 6시 경에 만나는 걸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내가 심카드를 구입한 것이 아니라서 카톡으로 청킹맨션 앞 롤렉스인가? 거기 간판앞에서 보자고 했다.
근데 퇴근 시간의 침사추이는 인파로 넘쳐난다. 못 마주칠까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 분을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을 설득해서 가게 되었다.
바로 홍콩 리츠칼튼 호텔에 위치한 OZONE BAR.
전세계 수많은 호텔 체인과는 달리 홍콩에는 100층이 넘는 곳에 리츠칼튼이 있다. ICC의 103층부터 118층.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텔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정도.
물론 그 곳에서 자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여력은 없고 가장 만만한게 호텔에 있는 칵테일바를 가보는 것!
그래서 그 누나랑(어느새부터 누나가 됬다?) 침사추이에서 ICC가 있는 구룡(kowloon)까지 왠진 모르겠지만 버스를 타고 갔다.
지하철은 빙 우회해야 했고 공항철도는 비쌌던 걸로 기억.
해외여행 시 버스는 상대적으로 고난이도 교통수단이다. 지하철처럼 다국어 안내가 잘 안되어 있기도 하고 스마트폰 초기 시절엔 지도로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경험이겠다 싶어 버스를 탔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큰 쇼핑몰이 위치해 있어서 가기 쉬웠다)
우선 서로 통성명을 한 상태이다 보니 점심에 처음 만났을 때 보다는 어색하지 않았다. 같이 이름모를 수제버거집에서 저녁을 먹고
야경이 예뻐질 때 까지 쇼핑몰 내부 구경을 했다. 몰 이름이 엘리먼츠 였던걸로 기억함.(elements)
확실히 직장인이라 그러신지 내가 엄두도 못내는 고가 매장에 들어가 옷도 입어보고 그러셨다.
나는 그저 구경만.. 그러다가 쇼핑몰 폐점 시간이 다되었고 정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길을 몰라서 내가 경비원분을 찾아 어색한 영어로 리츠칼튼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니 친절히 안내해 주셨다.
확실히 호텔이라 그런지 찾아가는 길부터 고급스러웠고 디자인도 세련되어 색다른 분위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메인로비가 103층에 위치해있어 엘레베이터를 타면 기분이 묘해진다.
스테이크 먹으러 63빌딩의 워킹온더클라우드만 가도 특별해지는 기분이 드는데 하물며..
돈 주고 타야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대만의 101빌딩과는 사뭇 달랐다.
단지 방문만 해도 백여 층을 이동하는 엘레베이터를 탈 수 있는 특별함.
일상의 단조로운 엘베만 타다 가끔씩 이런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로비에 도착하니 사뭇 느낌이 달랐다. 분명 여타 호텔과 비슷한 로비이지만 지상으로부터 100층 위에 있다라는 사실은 알수없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뭔가 천상계에 다다른 느낌? 좀 더 내 자신이 나아진 느낌? 들어와서는 안될 금기시 되는 곳에 발을 들인 느낌도 났다.
그리고 OZONE BAR에 가서 운좋게 홍콩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 석에 앉을 수 있었다.
카메라 화질이 좀 아쉽지만 바의 분위기와 전망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랑 꼭 와보고 싶어지게 한다.
이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얘기할 거리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 누나는 여행을 되게 좋아하셨다. 그리고 여행지를 갈 때마다 외국 남자랑 얽힌다고..ㅋㅋ
미국에 있을 때 야구를 보러가셨는데 그 때 구단주인가? 암튼 구글에 치면 나오는 사람이 작업을 걸었다고 말도 해줬다.
이곳 홍콩에 여행와서도 스페인에서 온 친구를 만났는데 계속 만나자는 연락이 온다고 하소연을 했다.
너무 옛날 기억이라 어떤 대화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지만 두 시간이 넘게 천천히 칵테일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이후 피곤하기도 했고 너무 늦으면 안되겠다 싶어 밤 10시쯤 내가 나가자고 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뭔가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택시를 타고 갔다.
공교롭게 둘 다 숙소가 침사추이 쪽이라서 내가 목적지를 페닌슐라 호텔로 가달라고 했다. 이때 누나가 엄청 웃었었는데..ㅋㅋㅋㅋㅋ
그렇게 홍콩 특급호텔의 도어맨이 택시 문을 열어주었고 우리 둘은 당당히 페닌슐라 호텔 로비로 들어간 뒤
쇼파에 앉아 브라스 밴드의 라이브 연주를 들으며 최대한 투숙객인 척을 했다.
다음 날 뭐하냐는 누나의 질문에 딱히 없다고 말했고 그렇게 내일 스탠리 베이에 가자는 말과 함께
호텔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와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태어나서 처음 이런 경험을 해서 매우 신기했다.
낯선이와 이렇게 친해질 수도 있구나. 나름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참 다행이었다!
다음 날 11시 경에 누나를 만나 버스를 타고 Stanley Bay로 향했다.
아마 한국인들은 굳이 여기까지 올 생각은 안할 것이다.
나는 진짜로 미련도 없고 더 이상 가볼 데가 없었기 때문에 가게 되었다.
어디서 버스를 탔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홍콩 남쪽 섬 한가운데 위치한 산을 통과하기 위해 긴 터널을 지났다.
전날 들른 리펄스 베이도 지났나? 아무튼 목적지에 다다르자
바다가 보였다!
물론 홍콩도 바다 옆에 위치해있지만 항만 시설로 그득하여 자연과 어우러진 예쁜 풍경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는 섬들과 산을 배경으로 바다가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겨울 홍콩 날씨답지 않게 모처럼 화창해져서 좋았다. 휴양지 느낌 물씬..
여긴 특이하게 백인들이 많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홍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놀러온 건가
아님 애초에 백인들이 여기 많이 사는 것인가..
둘 다인 것 같다.
아직도 백인 듀오가 저기서 버스킹을 하며 bye bye love를 불렀던 것이 기억난다.
대충 서치해서 여기서 맛있는 해산물 요리집에 들어갔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붐비기 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평화롭고 한적한 분위기.
가만히 구경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었다.
해산물, 조개, 홍합을 크림소스에 찍어먹는 요리.
밥을 다먹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약간 싱가포르 느낌이 많이 난 것 같다.
그리고 스탠리 플라자라는 소형 쇼핑몰 같은데서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에서 라디오에 VIdeo killed the radio star이란 유명한 노래가 나왔다.
외국인들이 다 떼창해서 나도 하고싶었는데 옆에 앉은 누나때문에 못했다..
이 날도 오고가며 각자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얘기를 했다.
나는 저 때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뭔가 다른 관계로 더 발전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다시 센트럴에 도착해서 트램도 탔다.
원래는 혼자 빅토리아 피크에 한 번 더 올라갈라 했는데 아까 좋았던 날씨는 온데간데 없고 흐려져 있었다.
또 주말이라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아 포기하기로 했고 그냥 그렇게 밤이 될 때 까지 홍콩 시내를 돌아다녔다.
저녁을 뭐 먹었는지 기억이 통 안나네..
아무튼 길거리 음식으로 계란빵을 사먹고
이후 누나가 지인으로 부터 뷰맛집(초고층 루프탑?) 칵테일바를 추천받아 거기로 가기로 했다.
더 원 쇼핑몰에 위치한 식당인데 찾아보니 지금은 폐점.. 근데 이 쇼핑몰에 워낙 다양한 식당들이 있어
비슷한 뷰를 언제든지 보러갈 수 있다.
진짜 서울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경치..
이런 뷰에 칵테일 가격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비싸졌을려나??
겨울이라 바람은 조금 불었는데 많이 춥지는 않았다.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질 때 오면 더 좋을 것 같다.
이때는 누나가 이성관계에 대한 강의를 해줬다.
자신의 연애스토리를 들려주며 결론은 많은 여자를 만나봐라였다.
그 당시에는 연애경험이 거의 없어 조금 회의적으로 들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맞는 말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운명의 상대를 만나 일찍 결혼하여 live happily ever after 할 줄 알았는데 모든게 허상임을 지금와서 깨닫는다.
또 기억나는 부분이 나보고 유럽여행 가기 전에 봐야하는 영화가 뭔지 아냐고 물어봤었다.
나는 자신있게 '미드나잇 인 파리'를 말했지만 바로 틀려버렸죠?
정답은 비포 시리즈란다.. 비포 선라이즈를 조금 봤었는데 다 본 것은 아니라서 한국에 돌아가면 전부 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러고는 군대 갔다오고 나서야 다 본 거는 비밀)
비포 선라이즈(비엔나) -> 비포 선셋(파리) -> 비포 미드나잇(그리스)
난 저 중에서 선셋을 젤 좋아한다. 미드나잇은 아직 공감가는 내용이 x.
이전에 감정이 있던 두 남녀가 오랜만에 재회하여 어색함없이 대화를 이어나가고 결국엔 사랑에 빠지는.
서른 다섯정도 되서 20대 때 알고지내던 지인들을 만나게 되면 어떤 감정이 들까? 궁금하다...
이 외에도 다양한 가르침을 들었다.
그러고서 시간이 늦어 각자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누나가 자연스레 팔짱을 꼈다.
그 때는 당황하면서도 누나가 많이 아쉬운가보다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이 역시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뭐 사람마다 판단하는게 다르겠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한 번 당사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아마 아기 엄마가 되어있을 공산이 크겠지만 궁금하긴 하다.
아무튼 그렇게 마지막 날 헤어지고
한국으로 돌아와 별 탈 없이 새터에 참석하고 대학 생활을 이어나갔다.
도중에 누나로부터 연락이 왔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는 않았다.
이후 시간이 흘러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한 뒤 인턴도 하고 휴학도 하고 지금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나.
그 긴 시간 동안 각자 많은 일들을 겪었을 것이다.
간간히 그분이 어떻께 살고있을지 궁금했지만 이내 내 삶을 사느라 잊어버렸다.
이제서야 나는 그 누나의 나이에 근접했다.
과연 나는 21살짜리 애한테 어떤 얘기를 해 줄 수 있을까.
그 내용들이 과연 가치가 있고 도움이 될 만한 것일까?
인생 처음으로 혼자 간 여행에서 관광을 넘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짧은 시간 만났던 인연이 내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며 이 사건들 역시 퇴색되어 갈 것이고
그 잊혀가는 기억 위에 어떤 추억들이 쌓여있을까?
홍콩은 해가 거듭할 수록 중국의 원 차이나 전략 하에 예전의 그 자유로움을 잃어가고 있다.
싱가포르의 라이벌로써 자유주의의 기수에 있던 홍콩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제는 홍콩 영화를 통해서만 그 분위기를 만끽해야한다는 현실이 아쉽다.
첨밀밀, 영웅본색, 중경삼림, 아비정전 등.
도쿄와 마찬가지로 홍콩도 이미 전성기가 지나간 듯 하다.
그런만큼 사람들의 추억 속에서 미화된 그 모습이 오래 유지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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