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끝나기 전
중고등학교 친구들이랑 계획해서 가게 된 대만.
평소 매체에서 하도 대만음식, 대만감성 그러길래
시류에 편승할 필요도 있겠다 싶어 갔다오게 되었다.
친구 한 명이 대구에서 공군장교를 하고있는 관계로
나머지 친구들은 수도권에 살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구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굳이.
대구에는 처음 가보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동대구에 도착한 뒤 모노레일을 타고 대구공항 근처로 가면서 느낀게
모텔이 정말 많다. 흠
아무튼 친구들을 하나 둘씩 재회하고
원래 친구 부대 내 생활관에서 자려고 했지만 거절당해서
근처 찜질방에서 자게되었다...ㅡㅡ
나중에 동성로 구경도 하고..
대구에서의 기억은 썩 좋지많은 않았음.
그렇게 두 세시간 날라가서 도착하게 된 타이베이.
그냥 비행기가 상공에서 가만히 있다가 착륙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대구랑 비슷했다.
고등학교 시절 북경에서 3개월 살며 느꼈던 것과는 전혀다른
대만만의 색채가 확실히 느껴졌다. 본토 중국보다는 한국과 일본에 가까운.
문제는 도착하자마자 미스트 잔뜩 뿌린것 같은 날씨..
약하게 내리는 비와 습한 대기..
공항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시내로 향했다.
베트남에서 살고있던 친구 한 명이 먼저 도착하여 숙소 체크인을 미리 해놓은 상황.
간단히 타이베이의 골목골목 사이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로 들어가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숙소 도착. 생각보다 방은 넓어서 괜찮았다.
숙소가 타이베이 최대 번화가 시먼에 위치해있어
친구들끼리 먹을 것좀 살겸 둘러봤다.
돌아다니면서.. 대만을 와서 즐겁다기 보다는 애들을 오랜만에 만나 재밌었던 것 같다.
다음 날 타이베이 101타워로 향했다.
사실 대만이 마땅히 볼 거리가 많지는 않기에..
또한 같은 동양권 이기도 해서 엄청 특별할 것도 없었다.
101타워 가기 전에 딘타이펑 본점에 갔다.
웨이팅 안 하려고 일찍 갔음에도 북적북적.. 그래도 회전율이 빨라 금방 들어갔다.
이젠 뭐 특별할 것 까지 없는 샤오롱바오와 훈툰 뭐시기, 볶음밥, 우육면 등을 먹고
맛있지만 엄청까지는 아니라는 만장일치의 의견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지금 저 다섯 명중 세 명이 공군장교다.
딘타이펑 본점 위치가 101타워 까지 일직선으로 3km 남짓한 거리였기 때문에
내가 먼저 걸어가자고 제안했고 친구들도 흔쾌히 오케이 했다.
하지만 비가 계속 내렸기에 불만은 끊이지 않았고.. 가다가 카페에 들려서 쉬어야만 했다.
쭉 걸어가며 느겼던 것이
비가 자주 내리는 대만의 날씨 때문이랄까
각 건물들의 1층마다 상점앞에 비를 안 맞고 갈 수 있게 통행로가 확보되어 있었다. 필로티 형식이라고 하나?
회랑이라고 보는게 편하겠다.
그래서 신호등을 건널 때가 아니고서는 거의 우산을 펼 필요가 없었는데..
계속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니 나중엔 귀찮아서 건물아래에서도 우산을 피고 다녔다.
본의 아니게 남들에게 피해를 끼침...
또한 건물들이 일본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듯한 양식으로 쭉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묵은 때가 껴있어서 대만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분명 처음 지어졌을 때는 느낌이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도 안걸려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던 101타워가 어느새
눈 앞에 성큼 위치해 있었고 무리 중 유일한 이과였던 나는
공업수학 표지에 나온 스팟을 찾기위해 친구들을 끌고 다녔다.
나름 만족할 만한 사진을 찍고나서
날도 흐린데다가 대만 스카이라인에 대한 기대감도 없고
입장료 또한 비쌌기 때문에 전망대는 만장일치로 걸렀다.
친구들은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지우펀으로 간다고 말했고
나는 이때 혼자 돌아다니고 싶어서 스스로 탈주를 감행.
나는 홀로남아서 101타워 내 쇼핑몰을 둘러보고
여기가 그나마 대만에서 세련된 곳임을 느꼈다. 약간 싱가포르 같은 느낌.
TWG매장 가서 사지도 않을거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금새 싫증나서 중정기념당으로 갔다.
장제스(장개석)를 기념하는 명예의전당 느낌?
대만이라는 국가, 타이베이라는 수도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과한 스케일로 지어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본토 중국을 의식해서 고의적으로 거대한 성과를 보여줘야 했던 지도자의 고심,
중공에 밀려 대만으로 쫒겨나듯 들어가야 했던 국민당의 자존심과
자유중국에 대한 자부심, 그럼에도 눈 앞의 한계에 다다른 대만의 애환 등등의 복합적인 감정들이
101타워, 중정기념당을 둘러보며 교차했던 것 같다.
그 후 독특한 양식으로 유명한 용산사로 향했다.
중국과 토속 양식이 합쳐진 특이한 형태의 디자인.
궁금해서 내부에도 들어가봤지만 향 냄새가 싫어서 금새 나왔다.
이 근처 시장에서 그 유명한 지파이를 먹고
숙소까지 걸어가는 도중 까르푸가 있어서 지인으로부터 부탁받은 선물을 사고
친구들이 오려면 시간이 더 남았기에
타이베이 역 근처까지 걸어가서 구경했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흐릿한 날씨 가운데 연식이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을 바라보며
지금의 대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확실히 90년대 까지 대만은
아시아에서 일본과 홍콩을 제외하고는 가장 선진적이었고
한국과 비교하기엔 자존심 상하는 입지로써
바로 옆에있는 대륙과 자주 거론되며
전 세계에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를 보여주는 기수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후 중국의 문호개방과 함께 정체된 대만은
큰 성과없이 답보상태에 빠졌고 2018년 지금도 그 시절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친구들 없이 혼자 숙소에 찾아가려니 좀 헤맸다.
로밍은 당연히 안했고.. 너무 미로같이 얽히고 섥힌 골목을 지나야 했기에..
어쨌든 감을 이용해 힘겹게 도착했다.
먼저 씻고 나서 몇 분 지나니 친구들이 돌아왔다.
지우펀은 어땠냐고 물어보니
가서 본게 한국인이랑 우산이 전부였다고.. 우산맛집 이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타이베이역 근처에 위치한
팀호완이라는 딤섬집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베이터우로 온천을 하러 갔다.
홍콩갔을 때 웨이팅 때문에 팀호완은 안갔는데 대만에서 가게될 줄이야.
여기에 노천 온천이 있는데..
입장하려면 수영복이 필요하다해서 샀다.
수영복을 가져온 친구들도 온천 규격에 안맞다고 새로 사야했다..
사진은 없었지만 2월의 대만은 늦가을 날씨라 좀 쌀쌀한??
벗고 있을때 약간 추웠지만 바로 온천에 들어갔을 때 그 기분...
최고의 순간 중 하나..
그렇게 친구들끼리 주변의 예쁜 여자를 의식하며 시간을 보내고 이내 온천에서 나와
단수이로 향했다.
중딩 시절 재밌게 본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가 바로 여기.
아마 여기가 대만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아닐까 싶다.
바닷가 따라 나있는 길거리.. 그 옆에 나란히 있는 가게들.
아기자기한 동네.. 동양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근처 위치한 가톨릭계 대학도 가고 시내도 둘러보고
여기서 대만 카스테라도 먹고..(한국인만 줄서있..)
큐브스테이크도 먹고 치킨도 먹고.. 먹기만 했네
돌아가는 도중 스린 야시장에 들려 구경을 했다.
한적해 보이던 타이베이 시내가 무색하게 많은 사람들이 여기 모여있었다.
인파가 너무 많아서 통행이 어려울 정도.
친구들에게 지파이를 먹게 해주려고 이리저리 찾았으나 파는 가게가 안보였다..
그 때 어느 아담하고 이쁘장한 여성분이 지파이를 손에 들고 걸어가시길래
영어로 냉큼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어봤다.
해외에서 한국인 여성에게 뭘 물어봤다가
경계의 눈초리를 받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괜한 짓을 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 여성분은 자기 일행이랑 무슨 말을 주고받더니 어딘 가를 가리켰다.
아마 저 쪽에 있나보다 싶어서 봤는데... 수많은 상점과 인파들 사이에서 알아보기란 불가능.
내가 모르겠다는 행동을 보이자 이내 자기를 따라오라고.. 해서 졸졸 따라갔다.
생각보다 가까운데 있는 가게에서 지파이를 팔고 있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다. (한국인은 아니였음)
그랬더니 메인랜드 선젼에서 왔다고!
내가 또 그새를 못참고 전에 배운 중국어를 동원해서
고맙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 등등을 말하니 엄청 좋아했다.
친구들만 아니었으면 같이 다닐 수 있는 분위기였는데..
이 상황을 지켜보던 친구 하나가 놀려댔다.
아쉬움을 뒤로한채 친구들과 먹을 것들을 사들고
숙소에서 각자 맥주 한 캔씩 마시며 마지막 날을 마무리했다.
막 자려고 하는 참에 건물이 울렁울렁 흔들렸다.
뭔가 싶었는데 이내 중국말로 긴급재난문자가 왔다.
네이버를 통해 확인해보니 진도5 정도의 지진..
난 그냥 대만은 워낙 지진이 잦게 발생하는 나라고
그에대한 내진설계도 잘 되어 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걱정없이 잘 잤다.(!)
근데 한국 도착하고난 다음 날, 대만 화롄이란 곳에서 건물이 지진 때문에 통째로 무너졌다... 다이나믹
다음 날 체크아웃을 하고
그 유명한 삼미식당에 먹으러 갔는데
식당에 도착하기도 훨씬 전에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로 추정되는 무리들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 눈에 띄었고
설마했는데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임을 깨달았을 무렵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삼미식당 앞에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여기도 한국. 한국사람 말고 다른 손님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남는게 시간이라 주변 카페에서 홍차도 마시고 기념품을 사면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니 드디어 입장.
좁디좁은 자리를 비집어 들어가 다섯 명의 건장한 남자가 협소한 테이블에 착석을 하니 참 가관이었다.
아무튼 그 유명한 연어를 비롯해 꼬치류 등 이것저것 시켜서 빠르게 해치웠다.
친구 하나가 여기가 맛집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는데...
맛이 없을 수 없는, 실패할 수 없는 음식만 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두꺼운 연어 회에 간장을 찍어먹는게 사실 상 맛없기 힘들다. 애초에 연어를 싫어하면 오지도 않았겠지.
생각해보니 대만의 먹거리가 맛있다는 소문도 맛없기 힘든 것들만 팔기 때문이라는 기적적인 논리가 내 머릿속에서 채택되었고
이로써 대만에 대한 좋은 인상도 한층 내려갔다.
대만의 향방이 문득 궁금해졌다.
미국에게는 아직은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카드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있어 중국과 엄청난 부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반중 무드를 취할 지 의문이다.
중국에 대해 날을 세운 채 미국과 계속해서 친하기 지내기에는 물리적으로 너무 멀고
대만의 국제적 입지 또한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인구 2천만이 살고있는 중국의 섬이 될지,
아니면 엄연한 국가로써 세계에 당당히 인정을 받을지.
그러나 여행 중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전자 쪽에 좀 더 가깝다.
아무리 대만이 장개석을 기리고 간체자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될 사안은 아니기 때문에.
대만이 보다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대책을 강구해 나갔으면 좋겠다.
물론 TSMC가 일당백 역할을 해주고 있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현재 반일 분위기가 한국을 뒤덮고 있는데
불매 운동을 통해 고작 유니클로 매장 하나를 폐점 시키고
일본 맥주나 의류 및 일본 여행 수치가 크게 줄었다고 기뻐하는 것은 정신승리와 다름없다.
대신 일본의 무역제재를 통해 현재 국내 기업들이 처한 위기와
이로 인해 무서운 속도로 빠져나가는 해외 자본, 동시에 무너진 코스피 2000, 증발해버린 수십 조.
동시에 시작된 원화의 평가절하, 반면 큰 피해는 없는 일본 등 현실적인 문제들을 감안했을 때,
언제까지고 자존심을 세워가며 대응을 할 것인지, 아니면 저자세로 숙이고 들어갈 것인지 냉정한 판단이 현 정부에게 필요할 것이다.
이미 숫자나 수치적인 싸움에서 게임이 안 되는 것으로 결론났지만,
현 정부의 강경한 정책은 정말 좌파 특유의, 감정에다 호소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강제적으로 반일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맘에 안들고,
그걸 국가적으로도 방치하고 오히려 장려하는 듯한 뉘앙스도 별로.
인천으로 가면 좋았으련만 대구에 저녁 6시 정도 도착하여 부리나케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고터에 도착하니 자정.. 9호선 급행을 간발의 차이로 놓쳐
야간 할증이 붙은 택시를 타고 기분 좋게^^(?) 집으로 갔다.
결론은
대만가느니 차라리 일본이나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를 가는 것이 더 날 것 같다.
약간 대만은 대한민국의 하위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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